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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19. 2019

동성애와 탈피, 그리고 노력-데이비드 호크니전

#호크니

<동성애와 탈피, 그리고 노력-데이비드 호크니전>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두 가지 코드는 '동성애'와 '탈피'다.

   노년을 맞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달랑 두 가지 코드로만 풀어낸다는 것이 무리가 있지만,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이 두 가지로 코드로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다.

    전시 전반부에 걸린 그의 초년작들에서는 동성애자로서의 그의 고민과 내적 갈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동성애가 터부시 되던 시기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한편으로는 작품에다가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듯 숨겨둔 상징들은 그가 혼란을 겪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그의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악을 쓰듯 표현하며 작품 속에 절규하듯 동성애 코드를 심겨뒀다.

    이런 작품 속에서 보이는 그의 자아는 어딘가 연약하고 여린 소년으로 표현돼 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외부로부터 부정당하는 상태에서 그가 찾은 해답은 자신을 부정해버리는 것 아니었을까.

    반대로 자신을 부정하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계속됐을 것이다.

호크니의 초기

    이 시기를 지난 뒤 호크니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금 더 자유분방한 세상을 만난다.

    물론 시계열상으로도 나이가 차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 지었다는 의미도 된다.

    이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뒤 과감하고 놀라운 예술적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전성기.

    이 시기에 제작된 판화와 그 유명한 '더 큰 첨벙' 같은 작품은 실로 그가 어떤 시각으로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는지 느끼게 해 준다.

    그의 물과 빛에 대한 묘사는 호크니의 관찰력과 회화 테크닉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잘 보여준다.

    빛의 강도와 반사, 분산에 대한 묘사는 뛰어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끝없는 노력이 빚어낸 산물일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보이는 사물과 자연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은 그의 작품이 왜 마스터 피스라 불리는지 쉬이 알 수 있게 해 준다.

    호크니의 그림에서 나는 천재성보다는 치열한 노력의 흔적이 더 진하게 보였다.

   그가 선 하나, 빛 한 줄기, 물 한 방울을 디테일하게 잡아 내고, 수없이 많은 연습을 통해 이를 어떻게 표현해 냈는지 그림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호크니 그림의 테크닉적 정교함은 그의 피나는 노력이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호크니의 역작 '더 큰 첨벙'
호크니가 그린 비어있는 벽면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빛의 강약에 따라 미묘하게 색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색감.

   호크니의 색에 대한 고민은 집착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집요하다.

    미완성 2인 초상인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의 벽면을 보면 빛이 들어오는 창쪽에서부터 방 안쪽 벽면의 명도 차이를 디테일하게 표현해 두었다.

   대형 작품에서 공간을 과감하게 남겨두고 색감과 명암의 차이로만 빛을 묘사해 채우는 호크니의 테크닉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훌륭했다.

    이런 빛에 대한 묘사는 '우리 부모님'이란 작품의 배경에서도 등장한다.

    색을 층위별로 분별해내는 눈을 가졌다는 호크니 답게 디테일한 빛 묘사와 색의 농도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좋았던 '아카틀란 호텔' 시리즈.

   나는 이번 전시를 보며 가장 놀란 것은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호크니의 노력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호크니는 일찍부터 변형 캔버스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 왔다.

    캔버스 자체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캔버스를 이어 붙이기도 하고, 그림틀에까지 회화 작품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초기작부터 현재 작품들까지 그의 탈피를 위한 이런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근법이다.

    호크니는 소실점을 하나로 잡아 원근법을 표현해 내는 서양화의 전통이 실제 세상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전통에서 탈피해 다시점에 대한 고민을 지속한다.

    그는 화가가 무빙 워크를 타고 이동하며 바라본 것 같이 '이동하는 초점'이 특징적인 중국의 행차도와 이집트 벽화를 서양화에 접목시켰다.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호크니는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하나의 그림으로 구현해 냈고, 여러 시점을 위화감 없이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또 우리 눈에 나타나는 왜곡에 대해서도 천재적으로 표현해 내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그림은 호크니가 멕시코 여행 중 차가 고장 나 잠시 머물었던 '아카틀란 호텔'을 그린 시리즈다.

   이 시리즈에는 그의 초점에 대한 고민과 결실이 모두 담겨 있다.

   마치 우리가 호텔 중정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묻어나는 이 그림은 호크니가 실제로 걸으며 느낀 시점의 변화를 하나의 그림 안에 다 담아냈다.

   여러 초점으로 사물과 공간을 표현하면서 호텔 안뜰이란 공간을 위화감 없이 구현해 낸다.

   이 작품은 가만히 서서 감상하기보다는 작가의 초점을 따라 걸어가며 보는 것이 좋다.

   호크니는 이런 과정을 거쳐 '더 큰 그랜드 캐넌' 같은 대작을 그려냈다.

   완성도에 있어서는 더 큰 그랜드 캐넌이 뛰어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예술적 가치가 아카틀란 호텔 시리즈가 훨씬 더 크게 보였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노년의 호크니와 그의 작업실이다.

   이 스튜디오 안의 모습은 그가 지금껏 노력해 왔던 흔적이고, 나이테와 같다.

   천재성을 품었으면서도 한텀도 쉬지 않고 정진해 온 호크니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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