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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02. 2019

<오프 더 레코드란 허상>

#에세이

<오프 더 레코드란 허상>

    '이건 오프(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가끔 기자 간담회나 브리핑에서 나오는 멘트다.
    오프 더 레코드는 취재원과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긴 하되 기사로는 작성해서는 안 된다는 묵계를 맺고 하는 대화를 지칭한다.
    그런데 사람의 말이란 것이 일단 뱉어 놓으면 자생력을 갖고 저 혼자 살아 돌아다니기 때문에 오프 더 레코드가 지켜지는 법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요즘 베이징에서도 오프 더 레코드가 화제다.
    내용인즉슨 고위 외교관의 브리핑이 오프를 전제로 하지 않다 보니 부실하고 영양가가 없어 무쓸모하다는 것.
    그렇다고 오프를 전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자니 신뢰의 문제가 걸려 있어 이 또한 쉽지 않다.
    발화를 듣는 대상이 기자인데 이게 안 새나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확률 낮은 도박에 판돈을 걸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혀 한번 잘 못 놀렸다가 목이 댕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미국 공관의 한 외교관이 말 한번 잘못했다가 큰 화를 당해 요새 외교가 사람들은 대왕 조개마냥 입을 꽉 다물었다.

    기자들도 바쁜 시간 쪼개서 가는 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고 거리 하나도 못 건지고 돌아와야 해 매우 곤란한 처지다.
    오프를 전제로 하자고 할 때는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말이 갖는 전파력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단 취재원의 말은 노트북을 거처 '텍스트'로 변환된다.
    변환된 텍스트는 기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보고 형식으로 윗선에 보고가 된다.
    뭐 여기까지는 오프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셈이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이 단계에서 오프 취재의 내용이 새나가면 책임 소재가 명명백백히 가려지기 때문에 각자가 오프의 묵계를 잘 지키는 편이다.

    문제는 '뇌'다.
    우리가 글을 쓸 때 혹은 문장을 구성할 때는 보통 머릿속에서 글감이나 단어를 꺼내는 과정을 거친다.
    뭐 가끔 뇌 없이 쓴 것 같은 글이나 기사들도 보이지만, 그런 글이나 기사도 사실 허울뿐인 것 같은 그들의 뇌를 거쳐 작성된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오프 취재 내용과 비슷한 주제를 다룰 때 무의식적으로 내가 아는 것과 오프로 취재한 것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글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에이. 말도 안 돼. 일부러 말하려니까 그런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의식해서 쓰더라도 약간 그 방향으로 문장이 편향되게 써진다고 해얄까. 정말 무의식적으로 문장이 기울게 돼 있다.
    일단 어떤 팩트가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에 그 팩트를 전제로 깔고 글을 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은연중에 오프로 거론한 사실이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만큼 오프 더 레코드라는 것이 허상에 가깝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론은 진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이야기는 오프든 뭐든 입 밖으로 꺼내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기자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알리고 싶을 때 죄책감을 조금 나눠서 지고 싶다면 기자를 만나 오프를 전제로 이야기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말을 꺼낸 사람보다는 기자에게 조금 더 큰 책임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는 그럴 때 쓰는 것이다. 업무에 참고하시길.
#오프더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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