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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04. 2019

<예술의 향기> 중국 국가미술관-추사 김정희展

#예술 #전시 #추사

<예술의 향기> 중국 국가미술관-추사 김정희展

    '지자불여호자, 호자불여락자'(知者不如好者, 好者不如樂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널리 알려진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경구다.

    즐긴다라. 

    무언가를 즐기는 경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지단한 세월을 보내야 할까.

    뭐 '1만 시간의 법칙' 이런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드려야 학문이든 기예든 예술이든 즐기는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요새 너무 바빠 사무실에 꽁꽁 붙들려 있어선지 기력이 없어 오늘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기력을 보충할 겸 사무실 옆 중국미술관에 다녀왔다.

    황금색 유리기와가 멋들어지게 얹힌 중국미술관은 1958년 자금성 바로 인근 북동쪽 3만㎡ 크기의 부지에 세워졌다. 

    신중국 건국 10주년 건축물 중 하나인 중국미술관은 입장료가 무료인데도 꽤 우수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미술관'이라는 현판은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 주석이 1963년 직접 쓴 것이다.

추사 김정희전이 열리는 중국미술관.

    내가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추사 김정희 전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한중 관계가 아직 냉랭한 데 이런 중요한 곳에서 추사전이 열린다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추사전이 열리기 전인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중국미술관과 한국 예술의전당이 공동 개최하는 '중국미술관에서 온 예술 - 닮음과 닮지 않음 : 치바이스와의 대화전'이 한국에서 먼저 열렸다.

    이번 전시의 그에 대한 답방형식의 전시라고 보면 된다.

    추사 선생이야 한국인들에게는 그 유명한 '세한도'를 비롯해 추사체를 창시했을 정도로 시·서·화 모든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문인으로 잘 알려졌다.

    내가 이번 전시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들에게만큼 그의 작품이 중국인들에게도 어필이 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도 휑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됐는데 명작은 누구나 알아본다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추사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찾아 북적였다.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한 태도와 눈빛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추사전 관람하는 중국 관객들

    추사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점을 찍은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을 작품에 녹여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겨우 5, 6세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당대 석학인 박제가로부터 사사를 제안받았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남달랐다.

    추사의 증조부는 영조의 사위로 명망가에서 태어난 추사 선생은 24살 때인 1809년부터 청나라 사절단의 부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을 왕래했다. 당시 베이징을 지금으로 따지면 뉴욕쯤 될까? 아무튼 선진문물을 젊은 나이부터 접하면서 눈의 트인 셈이다.

    추사 선생은 당시 청나라에서 중국 문필가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교류하며 문인으로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의 청장년기 작품을 보면 서예를 아예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 필치에 힘이 있고, 작품 전체에서 범상찮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왼쪽 글씨를 보고 천재성을 알아봤다면 그분이 더 천재 같다 ㅡㅡ. 오른쪽은 절정에 이른 추사 선생의 글씨.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작품들은 유배생활이 시작된 말년의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 시기 추사체를 완성하고 마침내 '즐기는 경지'에 들어선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면 자유롭다 못해 괴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품이 자유분방한 데 이를 추사는 '괴'(怪)라 칭했다.

    추사 선생은 추사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이렇게 응수했다.

    "괴(怪) 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후대의 평론가들은 추사체의 '괴의 미학'은 바르고 정갈함의 끝이자 기괴함의 궁극에 있다고 평했다.

    어려운 말 같지만, 간단히 풀어 보면 형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예술의 기원은 즐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있는 것 아니겠나. 추사는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를 하나로 융합해 즐기는 경지에 들어선 사람이었다.

    이를 가리켜 '유희삼매'(遊戱三昧 ·부처의 경지에서 노닐며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경지)라  한다.

    조금 더 쉽고 천박하게 말하면 '가지고 노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괴의 미학이 무엇인지 감사해보도록 하자.

    이런 경지는 여러 예술 대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데 추사 선생 역시 이 경지에 다다른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지에서는 무엇인가를 채우기보다는 내려놓음이 중요하다.

    내려놓지 못하고 움켜쥐려고만 하던 열정의 시기를 지나 관조하고 내려놓는 경지에 온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추사의 서체는 우스꽝스럽지만 진중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무게감이 느껴진다. 예술적 가치에서도 전성기 작품이 넘어설 수 없는 벽 저너머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문인화의 정수인 '세한도' 역시 이런 내려놓음의 경지에서 나온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유배지에 보내져 권력 한 터럭 남지 않은 자신에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린 세한도는, 

    논어 자한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는 구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처연한 신세가 되고 나서야 진정 자신을 위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문인의 깨달음이 담긴 세한도는 정말 휑한 폐가처럼 옹색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과 의미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말 그대로 즐기는 사람, 즉 내려놓을 줄 알고, 관조할 줄 알고, 정점에 다다라 봤던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가 그 안에 담긴 것이다.

    추사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이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언젠가는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사의 명작 중의 명작 '세한도'

#추사 #김정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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