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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06. 2019

<서평> 이렇게 살아도 돼

#서평

<서평> 이렇게 살아도 돼

    멘토란 무엇일까.
    요즘 멘토란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나도 어쭙잖게 세상을 좀 안다고 뻐기고 다니던 시절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에게 되지도 않는 충고를 많이 했다.
    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뭐는 하면 안 된다. 이건 꼭 해야 된다.
    나중에 기자가 돼서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연히 그런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게 됐다.
    간혹 자소서, 취업 비결, 고민 상담을 요청해 오는 후배들이 있으면 '노하우' 정도나 썰로 풀어주고, 글들을 첨삭해주는 정도가 다였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느낀 것인데 세상 모든 사람이 한 모양으로 살지 않는데 나와 다른 삶을 산 친구들에게 해주는 충고가 얼마나 정합성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그런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가 있으면 밥이나 술을 사주며 이야기나 들어주는 식으로 '멘토링'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요즘 보면 멘토 전성시대다.
    여기나 저기나 멘토가 난무하고 조금이라도 성공했다 치면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떠들어 대는 통해 '멘토 소음'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그리고 그 멘토들은 십중팔구 자기 말과 행동이 상반되거나, 자신의 사익을 위해 멘티를 이용해 먹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댈 곳 없는 청춘은 산속을 지나는 나그네처럼 어스름한 불빛을 따라 그런 가짜 멘토들에게 몰려드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SNS에 멘토를 자처하는 고등 교육을 받은 한 사람이 이런 비슷한 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고, 이틀 전에도 젊은 여성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이 요상스러운 글을 써서 어스름한 불빛을 쫓아 몰려들었던 멘티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렇게 살아도 돼'는 지은이인 박철현 작가(본인은 노가대꾼이라 지칭함)의 삶을 담아낸 에세이집이다.
    전편의 저작들이 밝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번 편은 그가 살았던 어두운 삶의 부분을 특유의 씩씩함과 시원시원한 필체로 써내러 갔다.
    원래 남이 살아온 이야기 듣는 것이 제일 지루한데 시나리오 작법을 연마한 분답게 나같이 난독증이 있는 독자도 2시간 안팎이면 다 읽을 수 있게 재미나게 책을 쓰셨다.
    책에는 그가 겪었던 정말 일반인스럽지 않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한 움큼 나온다.
    물론 고생 좀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경험들이기도 하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경험이 한 사람이 그것도 굉장히 짧은 시기에 종합 선물 세트처럼 겪었다는 것이다.
    나는 박 작가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글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이미지를 표현한다면 그는 '품이 넓고, 매사에 열심인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직접 만난 적이 없어 단언하긴 그렇지만 글에서 비치는 이미지만 보면 그렇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왜 그렇게 그에 대해서 느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흑백 무성영화같이 지루하고 지극히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도 붙들고 물어보면 자기만의 고민과 고난이 있는 법이다.
    왜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천석꾼 만석꾼의 자식들도 괜한 짓을 하다가 옥살이까지 하지 않나.
    다만, 이런 위기의 순간을 우리가 얼마나 잘 넘기느냐는 각자의 몫이자 책에도 나와 있듯 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책 속의 박 작가님은 천분의 일의 확률로 '선량한' 사채업자를 만났고, 삐끼 왕의 지인도 만났고, 공무점 사장님도 만났고, 그리고 위대하신 아내분도 만났다.
    이런 운이 위기의 순간마다 그에게 찾아온 것은 정말 순전히 '운' 때문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것은 사람을 대하는 진심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것도 생판 남이 어떤 사람을 도와줄 때 가장 주요한 동인은 그 사람의 '사람됨'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됨이라는 애매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로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다.
    그게 업무적인 관계가 됐든 사적인 관계가 됐든 채무 관계가 됐든지 말이다.

    내가 책에서 만난 박 작가님은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마음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말대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타지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으로서 생존 스킬처럼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그의 삶의 태도가 만들어낸 인연들이 그를 위기에서 건진 것만은 분명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박 작가님은 "운기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로 삶의 노하우를 녹여냈다.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나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해서 "운을 쌓으며 산다"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 쌓아 놓은 운이 내가 지쳐 쓰러진 순간  내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 이 말만큼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박 작가님에게 찾아왔던 운은 모두 그가 삶으로 쌓았던 운이 만기가 찬 적금처럼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것 같아 다시 멘토 이야기로 돌아가 한마디만 더 하고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내가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난무하는 '멘토'들처럼 자신의 경험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역경을 견딘 사람들이 종종 자행하는 실수인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같은 어조가 그의 글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멘토란 그런 것이다.
    내가 멘토임네 하며 지적질을 해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으로 묵묵히 후배들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는 것.
    모두가 다른 모양인 삶은 어차피 남이 살아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보다 지치고 힘들 때 들러서 술 한잔 함께 기울일 수 있는 테츠야 마스터 정도의 포지션이 조금 앞선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고단한 삶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살아도 돼'라는 술집에 잠시 들러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테츠라는 마스터를 만나 보길 바란다.
#이렇게살아도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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