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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12. 2019

고독의 농도

#에세이

<고독의 농도>

    우리 아이를 보면,
    그러니까 아주 착하고 양보를 잘 하지만 사실은 상처를 잘 받는 우리 첫째 호수를 보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렇게 조그만 몸과 마음에 저렇게 어린 나이부터 외로움과 고독이 쌓여 가면 나중에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 낼까?'

    나와 너무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탓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를 한참을 들여다보고 물어야 눈꼽만큼 알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아이.
    예전에 한 번은 친구들 때문에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호수는 지금 어떤 기분이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호수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속상해"라고 말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아직 어려서 말이 서툴고 표현이 정확치 못해 자기도 답답하겠지 싶으면서도 그 안이 쌓일 수많은 말과 상처에 마음이 곪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유치원 캠프에 가기 전날 잠자리에서 호수는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소용돌이가 와서 나는 죽었어"

    가끔 그런 그로테스크한 말을 하는 편이고, 유치원 캠프를 엄청 기대했던지라 대수롭잖게 여기긴 했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학교 다닐 때 보면 교실 맨 뒤쪽에 말없이 앉아 있는 친구들이 있다.
    무언가 하는 듯 않는 듯 가끔씩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면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고 이어폰을 꽂는 그런 친구들.
    호수는 그런 사람일까. 도통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아이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답답하다.
    남자아이니까 좀 둘째 녀석처럼 활달하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후에는 모두가 그런 성격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니 그냥 속이 깊고 생각이 바른 아이로 자라도록 도움을 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가끔 친구 무리에서 튕겨져 나와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호수를 보면 마음이 쓰리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싶지만 다가갈 용기와 친구의 무례를 거절할 모진 마음이 없는 게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겠지.
    저 나이부터 저런 고독을 쌓는다면 얼마나 짙은 농도의 고독이 몸 안에 응어리질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서서 세상에 치여 따스한 온기를 찾아 돌아온 아이를 안아주는 게 전부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호수가 내 나이가 됐을 때 쌓인 고독의 농도는 지금의 나보다 몇 배는 더 짙을 것이란 거다.

    사람에겐 누구나 고독의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이 얼마나 깊고 얕은지와 그 안에 차오른 고독의 짙고 옅음이 다를 뿐이다.
    어제 유치원에서 보내온 캠프 사진을 보며 즙칼에 긁힌 것마냥 가슴이 또 쓰렸다.
    풍선이 가득한 교실에서 모든 아이들이 즐거워 뛰는 풍경 틈에 귀를 막고 겁에 잔뜩 질린 호수를 발견한 건 나뿐인 듯했다.
    가끔 백화점 행사 같은 때 받아온 풍선 하나에도 혹여 터지지는 않을까 가까이 가지 않는 아인데 자기 눈에 폭탄 같은 풍선이 가득한 교실을 거니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여러 사진 속에서 호수는 귀를 막은 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선생님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풍선을 무서워하는지 미리 살필 수는 없으니.
    우리를 탓할 필요도 없다. 풍선 파티가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는 없으니.
    다만, 친구들과 신나게 밤을 지새울 생각에 설렜을 마음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쳐 망쳤을까 속상할 뿐이다.
    그렇게 또 호수의 고독은 짙어졌겠지.
#고독의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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