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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16. 2019

<우리 처제 찬송이는요>


<우리 처제 찬송이는요>

    우리 처제 찬송이는요...참 착합니다.
    저는 요즘 애들 중에 이렇게 착한 애를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찬송이를 처음 본 것이 와이프와 막 연애를 시작했을 20살 무렵이니까 찬송이가 초등학교 5학년쯤일 거예요.
    찬송이는 그때도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어요.
    언니랑 남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외모가 하나도 안 닮았는데 둘이 누워서 자는 것을 보면 또 꽤 닮았습니다.
    또 공부를 엄청 잘하지는 않았지만, 공부 욕심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학원 강사 일을 할 때는 영어 과외를 몇 달간 해주기도 했었는데 영어 바보인 내 수업을 들어면서도 참 착하고 말을 잘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찌나 고지식한지 제 평생에 와이프보다 더 고지식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물론 조금 지저분 한 면이 없진 않지만요. 하하하.
    전주에 살 때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찬송이가 바나나를 먹으면 어디서 먹었는지 온 식구들이 다 알 수 있었죠. 왜냐면 바나나 껍질이 소파고, 침대고, 의자고 찬송이가 앉은자리에 고대로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도 참 착했어요.
    찬송이는 처가 식구들이 모두 대형 교회에 다닐 때도 홀로 꿋꿋이 원래 다니던 동네 개척교회에 다녔어요.
    지구촌 교회라고 신도가 20여 명 정도나 됐던가 그랬는데 찬송이가 교회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교회 반주를 찬송이가 했거든요.
    대학 진학할 때나 간호사 시험 준비할 때나 힘든 직장 생활할 때나 제 기억에 찬송이는 반주 때문에 거의 교회에 빠진 적이 없었어요.
    찬송이는 나중에 대학병원 간호사가 됐는데 하필 수술방 간호사가 돼서 흉부외과에서 일했어요.
    그때도 주변의 우려에도 특유의 착함으로 묵묵히 일을 해나갔죠.
    제가 봐온 찬송이는 여려서 수술방 생활을 두세 달도 못 버틸 것 같았는데 좀처럼 틀리지 않는 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어요.
    그 뒤로 4년 넘게 찬송이는 수술방 간호사 일을 해냈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주말에 오프일 때는 언니가 부탁하면 꼭 우리 집에 와서 호수랑 단이를 봐주는 일도 마다치 않았어요.
    고된 수술방 일에 치여 주말이면 쉬고 싶을 법한데도 언니가 부탁하면 애들을 봐줬습니다. 그 틈에 우리도 육아의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우리 집안에는 믿음의 두 기둥이 있다고 저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하나는 간당간당하게 제가 맡고 있고, 하나는 찬송이에요.
    저는 찬송이만큼 믿음이 좋은 아이는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바울의 믿음이라면 찬송이는 베드로의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하고, 착한 그 믿음이 저는 참 보기 좋았습니다.
    찬송이는 그리고 정말 검소한 사람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도 한 달에 교통비 포함해서 14만 원 정도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돈을 어디에 따로 둔 것은 아니고, 장인어른 사업 자금에 보태거나 집안에 큰일이 있으면 내놓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본인 돈이나 남의 돈이나 한 푼도 헤프게 쓰는 법이 없었던 것 같아요.
    와이프도 짠순인데 찬송이는 록수보다 더 짠순이였죠.
    그렇게 알뜰살뜰 돈을 모으더니 몇 년 지나고 꽤 큰돈을 모았더라고요.

    우리가 중국으로 떠나고 얼마 뒤 찬송이는 갑자기 멀쩡히 다니던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했어요.
    말은 안 했지만, 수술방 간호사 생활이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모두 '쟤가 왜 저러나'하고 뜯어말리기 바빴는데 찬송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식구들은 '본인 선택이니 놔두자'하고 가만히 찬송이를 지켜봤습니다.
    솔직히 시험에 떨어져도 개인 병원이든 어디든 다시 취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생각보다 찬송이는 열심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 일찍 독서실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생활을 8개월간 지독스럽게 해 나가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마지막 한두 달은 허리 디스크가 와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공부를 해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공부하는 동안 용돈도 몇 번 쥐여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 찬송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오늘 연락이 왔어요.
    마음속으로는 '참 장하다. 장해' 여러 번 외쳤는데 전화를 받고는 괜히 멋쩍어서 "하이고, 요새 공무원 아무나 하나 보구먼"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생각도 나고, 누구보다 걱정을 싸 짊어지고 사시는 우리 처 할머니 노상옥 여사의 얼굴이 머리에서 스치더라고요.

    아직도 내 눈엔 초등학교 5학년 같이 애기 같기만 한데 자기 몫을 턱턱 해내는 찬송이를 보니 뭔가 뭉클합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찬송이가 벌써 30살이 다 돼 갑니다.  어서 연애도 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시집도 가얄텐데.
    저도 이제 마음이 많이 약해진 건지 아재가 된 건지 오늘은 괜스레 기분도 좋고, 흥이 오르는 것이 꼭 한잔해야겠더라고요.
    기분 좋게 약속 자리에 나가서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남들은 알지도 못하는 처제 자랑을 실컷 하고 왔습니다. 그러고 오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제 곧 한국에 갈 텐데 이번에 가면 찬송이 첫 출근할 때 입을 정장 한 벌 사줘야겠습니다.
    통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사줘야겠어요. 하하하하하. 아~기분 좋다.
#우리처제찬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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