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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l 17. 2019

우리가 보는 것은 진실일까? 레안드로 에를리치展

#예술의향기 

<예술의 향기> 노장사상과 레안드로 에를리치

    '우리가 보는 것이 진짜로 진짜일까?'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우리는 정말 정확히 그 대상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눈앞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임에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부분에 불과하거나 오히려 진실과는 정반대인 거짓인 경우도 있다.

    이런 노장사상 같은 예술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작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색목인이라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를리치는 관념 미학 어워드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도쿄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에를리치가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길래 다녀왔다.

    한국에서 진행한 전시가 작품 규모 때문에 몇 점 밖에 전시되지 못했는데 이번 전시는 세계 정상급 미술관인 중앙미술학원에서 열린 덕분에 많은 작품이 건너 왔다.

    그의 작품은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아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뒤 관객들이 작품을 즐기는 사이 '쾅'하고 머릿속을 울리는 깨달음을 선사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에를리치는 작품에 거울을 많이 활용한다. 착시 효과를 활용하는 것인데 내가 보는 것이 사실은 왜곡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눈으로 보기에는 정육면체 같은 공간이 사실은 납작한 마름모꼴이라거나 끝도 없이 깊어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사실은 공중전화 부스만 한 상자라거나 이런 작품들을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물론 싸구려 트릭 아트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면 그 정교함과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작가의 시각에 놀라게 된다.

    특히 그의 작품이 좋은 이유는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 자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에를리치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 좋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은 구름을 여러 유리판의 평면 이미지를 겹쳐서 표현한 작품이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뭉게뭉게 하늘에 떠 있는 구름같이 보이지만 90도만 돌아 측면에서 바라보면 멋대가리 없는 유리판 8장을 겹쳐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 극명한 대비가 나에게 전해 준 것은 어떤 사안을 볼 때 내가 측면에 서 있는지 정면에 서 있는지에 따라서 그 대상은 확연히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에를리치의 작품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친숙하게 다가가 신기함에 놀라 하하호호 웃고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면이 과연 절대적인 정의라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삶을 살아갈 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끊임없이 자신의 사고와 생각을 의심하는 것.

    그런 자기 고찰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허황된 진리를 쫓아 달려가는 무지렁이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념적이 생각을 에를리치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보는 소재로 쉽고, 정확하게 우리에게 내보인다.

    일반인과 다른 예술가의 시각으로 정확히 그 지점을 끄집어내는 그의 재능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아무래도 예술가의 눈은 일반인과 다르겠지.

    에를리치 본인도 "나의 예술의 결국 현실을 돌이켜보고,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푸른 눈의 아르헨티나 작가 작품에서 노자 도덕경의 핵심인 '도가도 비상도'를 느끼다니 참으로 묘하다.

#레안드로_에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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