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
<맛객> 한국엔 '치킨'이 있다면 중국엔 '마라롱샤'가 있다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별미는 무엇일까.
한국에 치킨이 있다면 중국에는 마라룽샤(麻辣龙虾)가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마라 소스에 작긴 하지만 가재의 행색을 갖춘 갑각류 콤비는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강력한 조합이다.
중국에서 한 해 소비되는 샤오룽샤 양은 100만t 이상, 금액으로 따지면 한화 24조 원이 넘는다.
14억 중국 인구가 여름 내내 마라룽샤를 멸종시킬 각오로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양이다.
사실 여름 야식의 '철의 왕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음식 자체보다는 여름 하면 떠오르는 식음료계의 밤의 실세 맥주다.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여름밤 시원~~~한 맥주의 유혹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깡 맥주만 마셔도 물론 좋지만, 술이란 게 또 안주 없이 먹으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치킨 역시 '치맥'(치킨+맥주)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낼 정도로 맥주와 찰떡궁합을 바탕으로 국민 간식의 칭호를 얻었다.
그렇다면 대륙을 사로잡은 야식인 마라룽샤는 어떨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히 단언컨대 한국에서 마라 맛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조만간 '마맥'(마라룽샤+맥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그 정도로 마맥의 파괴력은 치맥의 아성에 도전할 만큼 강력하다.
그럼 우선 마라룽샤가 무언인지부터 알아보자.
이름을 세세히 뜯어보면 '마라'는 매운 양념, '룽샤'는 가재라는 뜻이다.
마라야 이미 널리 알려진 그 얼얼하고 매콤한 양념을 말하는 것이고, 룽샤는 중국어로는 바닷가재지만 실제로는 '샤오룽샤'(민물가재)를 가리킨다.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이 샤오룽샤가 미국산이라는 것.
미식 천국인 중국의 여름밤을 책임지는 야식이 사실은 미국산 민물가재였던 것이다. 정말로 학명이 'Procambarus clarkii'로 '미.국.가.재'라는 뜻이다.
사실 마라룽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에 마라룽샤가 들어온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18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미국가재가 건너간다. 일본으로 건너간 미국가재는 1929년 현해탄을 건너 조선반도를 지나 중국 남방에 진출하게 된다.
민물가재의 서식지가 따뜻한 기후인 것을 생각해보면 중국 남방에서 미국가재가 마라 양념을 만나는 것은 예정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마라룽샤는 중국 전통 음식이라고 하기보다는 20세기 말에 중국 남방 특히 후난(湖南) 지역에서 유행하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양대 매운맛 지역인 쓰촨(四川)과 후난 중 유독 후난에서 마라룽샤가 유행했던 이유도 샤오룽샤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점과 샤오룽샤의 서식환경이 강이 많은 중국 남부 지역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남방 요리였던 마라룽샤가 어떻게 중국 대륙을 호령하게 됐을까.
약간 싱겁게 들리겠지만, 한국에서 음식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이 하루아침에 인산인해를 이루듯 마라룽샤도 4∼5년 전 후난위성과 CCTV 등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방송에 나왔다고 해도 음식 본연의 맛이 없다면 이렇게 광풍을 일으키기는 어렵다. 그만큼 마라룽샤가 누구나 좋아하는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마라룽샤의 인기 비결은 '중독성 있는 매운맛'에 있다.
중국에서 맛 기행을 다니는 맛객 입장에서 이렇게 간단한 설명만 할 수는 없기에 몇 가지 이유를 더 찾아보았다.
마라룽샤는 중국 어디서나 여름철이면 쉽게 맛볼 수 있다. 베이징에도 당연히 마라룽샤를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명세기 돼지터리언국 총리로서 동네 마라룽샤 집에 가는 것은 조금 모양새가 빠져 친한 지인들과 베이징에서 마라룽샤로 가장 유명한 구이제(簋街)를 찾아갔다.
구이라는 한자가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데 구이(簋)는 '고대에 제사 지낼 때 서직(黍稷)을 담던 귀가 달린 나무 그릇'이라는 뜻이다. 풀이해보면 '곡식(조와 기장)을 담는 그릇 거리'정도 될까. 이름부터 뭔가 먹을거리 포스가 느껴진다.
구이제는 베이징 2환 둥즈먼 인근에 있는 1㎞ 정도 되는 거리다. 이 공간에 다닥다닥 식당 150개가 들어차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구이제를 가리켜 베이징 '미식 1번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구이제에는 그냥 '마라룽샤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마라룽샤 식당에 잠식당했다.
그래서 맛의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 나는 구이제를 베이징 미식 1번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구이제에 있는 후다판뎬(胡大饭店)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는 구이제에만 10여 개의 분점이 있다.
우리도 가장 인기가 있는 후다판뎬에서 마라룽샤를 먹어보려 했다. 그러나 오후 5시 30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전 매장이 문밖까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룬 뒤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후일 다시 후다판뎬을 도모하기로 하고, 그보다 조금 인기가 적은 마라룽샤 제이제이(仔仔)라는 프랜차이즈점에 자리를 잡았다.
샤오룽샤의 조리 방법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마라룽샤지만, 마라룽샤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조리 방법은 모두 세 가지 정도다.
이 세 가지는 마라와 마늘, 간장 양념을 이용하는 거다.
나처럼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은 마늘 양념을 추천해주고 싶다. 마늘 양념은 적절히 매운맛과 감칠맛이 어우러져 한국인 입맛에도 맞고 나름대로 맥주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간장 양념은 음... 중국 간장 특유의 향 때문에 나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다시 본래의 포스팅 취지로 돌아와서 마라룽샤가 왜 맥주와 궁합이 맞는지 설명해 보겠다.
먼저 마라룽샤는 짜고 맵다.
당연히 맥주와 어울리는 맛이다. 게다가 염분은 맥주를 물처럼 만들기 때문에 술에 잘 취하지 않는 효과까지 있다.
또 마라룽샤의 태생적인 단점(?)인 삐쩍 마른 살점이 맥주의 대량 섭취를 유도한다.
마라룽샤를 먹어보면 알지만, 이름만 가재지 머리를 떼고, 양쪽에 달린 살점 하나 없는 집게 다리를 떼면 몸통과 꼬리 부분에 알량하게 달린 손가락만 한 살 조각만 남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강한 양념도 맥주를 강력히 끌어당기지만, 양이 워낙 적기 때문에 살을 발라 봐야 양념만 입안 가득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켤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사실 맥주를 한국인들처럼 차갑게 먹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뜨거운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어 차가운 음료를 먹으면 쉽게 배탈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라룽샤 식당에서는 시원~한 맥주가 엄청나게 팔린다. 그것도 테이블마다 짝(20병)으로 두고 마신다.
이게 직접 먹어 봐야 아는데 통풍 환자인 나조차도 자제를 못 할 정도로 마라 양념에 얼얼한 입을 '습습하하'하며 계속 맥주를 마시게 된다.
말 그대로 '맥주도둑'이다.
또 쥐 알탱이만 한 살점이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그 한 점의 가재살은 그렇게 또 맛이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무지하게 더운 여름밤 왁자지껄한 식당 분위기에 취하는 거다.
마라룽샤 식당은 애주가라면 누구나 맥주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공간적 매력이 있다.
혹시 한국에 마라룽샤 집이 있거든 한 번쯤 찾아가서 먹어보시길 바란다.
단, 먹고난 다음날 뒤가 화끈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맛객 #마라룽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