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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Sep 04. 2019

내 집

#에세이

<내 집>
    올해 내 나이 만 37세.
    무일푼으로 결혼해서 아니 사실 빚으로 시작했으니까 마이너스로 시작해서 어제 드디어 전주 아파트 잔금을 다 치렀다.
    온전히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산 것은 생애 처음이다.
    물론 중국에 오기 전부터 살던 집이고, 행정절차도 양가 아버님 두 분이 대신해주셔서 실감은 안 나는데 어쨌든 모든 절차를 마쳤다.
    전주 시골 바닥에 있는 33평짜리 아파트라 서울 전세만도 못하지만, 그래도 내 집이 생겼다니 기분이 묘하다.
    사실 우리 집에서 온전히 본인 명의로 된 집을 산 것은 내가 처음이다.
    부모님은 아직도 전·월세에 살고 계시고, 해외 살이 하는 누나도 렌트해서 살지 집을 사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유목민이 따로 없는 삶을 그간 살아온 셈이다.
    어려서는 남들 다 있는 혹은 있어 본 집이 왜 우리만 없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일찍 철이 들기도 했으니 좋다면 좋은 거지만, 가끔은 집이 있었으면 했다.
    결혼해서도 제대로 된 집이 없으니 이리저리 근간 없이 떠도는 것 같아 항시 불안감이 있었다.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집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 세대만 해도 좀 가세가 좋은 집은 부모님이 결혼할 때 아파트를 해주기도 하고,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회 초년생이 자력으로 집을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도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하려면 평생을 모아도 부족할 만큼 힘든 일이다.
    
    어제 바빠서 잊고 있다가 아빠한테 '다 처리했다'라는 문자를 확인한 때가 밤 10시쯤 됐던 것 같다.
    나는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었고, 록수는 부엌에서 호수 도시락 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자를 읽은 뒤 부엌 너머로 록수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짠하고, 고마웠다.
    "쟨 뭘 믿고 그지 딱지 같은 나랑 결혼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내 수중에는 돈 1000만 원이 전부였다.
    그 돈에 대출을 좀 받아 회사 앞에 오피스텔을 얻고 다달이 월세랑 이자 내고, 주말부부 하느라 인천에서 전주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 부모님 용돈, 또 가끔 터지는 '사고'를 수습하기도 빠듯했다.

    전주에 내려와서 처음 살림을 산 것도 처가였다.
    처가에서 호수가 태어나고, 단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지금 집으로 이사 온 것이 5년 전.
    인천에서 살 때나 처가살이를 할 때나 지금 집으로 분가했을 때나 록수는 한 번도 집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이 없다.
    기자 초년병 때는 내가 허구한 날 바깥으로 도니 가끔 화가 날 때면 "남들은 전세라도 갖고 시작하는데"라며 눈을 흘기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원망한 것은 아녔다.
    혼자 센치해져서 부엌일을 마치고 나오는 록수한테 "고생했네. 그간"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록수는 평소에 집에서 말을 잘 안 하는 편인 내가 뜬금없이 고생했다고 하니 토끼 눈을 뜨고 날 쳐다봤다.
    "또 사고 쳤어?"라는이 뒤따라 나왔다.
    약간 산통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웃다가 "아니, 집 잔금 어제 다 냈다고"하니
    "원래 살던 집인데 새삼스럽게, 그리고 빚이 얼만데"라면서도 좋아하는 기색이다.
    
    어제는 바빠서 축하를 못 했는데 오늘은 집에 가면 좋은 분께 선물 받아 꼬불쳐 둔 돔 페리뇽이라도 따서 축하해야겠다.
    그래. 나 집 샀다고.
    그간 고생했다. 나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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