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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Oct 30. 2019

불행은 왜 착한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가

#에세이 

그림 : 팡리쥔

착한 사람을 위한 기도-불행은 왜 그들에게 자주 찾아오는가

    최근 내가 아는 사람 중 세상 좋은 분들이 몹쓸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하루새 두 번이나 들었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항상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왜 항상 불행은 착한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까.

    개똥 같은 세상이라 빨리 하늘로 데려가려는 신의 배려인가.

    이런 생각을 친한 사람들과 나누다가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착한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도 남도 그 사람이 아파도 괜찮은 줄 알아서 그래"

    맞는 말 같다.

    사실 이기적인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피우거나 조금만 손해를 봐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한다.

    착하고 여리고 속으로 아픔을 삭일 줄 아는 착한 사람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앞을 지나는 고통을 냉큼 주워 집어삼켜 버리기 때문에 제 몸이 골병이 드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남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사람을 향한 신의 숨결이나 배려는 없을지 모른다.

    그저 자기가 감내한 고통만큼 죽음을 빨리 만나는 간단한 작동 원리만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승에서 삶과 저승에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신도 이승의 삶이 길든 짧든, 남겨진 가족의 고통이 크든 말든 크게 괘념치 않는 것이리라.

    착한 사람이라면 명이 길더라도 남은 생애 내내 남한테 찢어발기며 고통 속에서 살아갈 테니 오히려 얼른 죽음의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겨진 자들과의 이별의 슬픔은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 보상받으면 될 테니까.

    죽음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삶의 궤적에 모습을 드러낼 때면 가만히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현대인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고 하니 나도 암으로 죽음을 맞을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겨울바람에 불씨가 휙- 꺼지듯 급작스레 삶을 마칠 수도 있다. 아니면 천수를 누리다가 정신이 흐릿해져서 죽음을 인지조차 못 한 채 눈을 감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막 반갑거나 막 싫지도 않다.

    사실 사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해 죽음을 반기는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는 날까지 최대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남에게 해가 되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면, 요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운케 하지 않으려고 고민한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남에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보다는 내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섭섭게 한 일이 더 후회스러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을 다 써가지만 여전히 불행이 왜 착한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신이 존재해 그들의 불행이 사실은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기를 바랄 뿐이다.

#착한사람들을위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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