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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3. 2019

수고하셨습니다. 이모님


'우리는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오늘 베이징에 온 뒤로 가장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흑사병도 아니요, 김정은 방중 기별도 아니요, 임기 10년 연장 소식도 아니다.

우리 사무실 점심을 책임지시는 사랑하는 이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신단다.

올해 아흔다섯이신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병구완차 고향 언니 집에 가셔야 한다고 한다.

벼락같은 소리를 하도 담담하게 하셔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겨우 정신머리를 잡고 "자리 비워 두겠다" 입을 뗐다.

귓방맹이라도 얻어맞은 듯 얼빠진 사람처럼 붙잡는 손길에도 결심이 선 듯 이모님은 한사코 거절하시며 이제 고향 갔다 오면 좀 쉬고 싶다고 하셨다.

고향에 남편과 자식, 친정, 시댁 식구들 놔두고 한국에 가서 10년 넘게 억척스레 식당 일을 하셨던 이모님.

자식 명문대 보내고 번듯한 직장 들여놓고, 중국에 집도 두 채 마련했다고 할 일 다 해서 쉴 날만 남았다던 이모님.

평생 짐짝 같은 바깥양반 건사도 다 하고, 요즘엔 며느리 뒷바라지까지 하시면서 소일거리로 우리 사무실에 나오셨던 이모님이다.

'쉬고 싶다'는 말에 고향에 계신 엄마 생각도 나고, 내가 뭐라고 붙잡나 싶어 더는 붙잡지 못하고 "알겠다"고 답했다.

점심 식탁이 직원들 울음에 눈물바다가 됐다.

나는 괜스레 "그러게 이모님 계실 때 맛있게 많이 먹으라고 했지!"하고 식탁을 박차고 나왔다.

오늘 점심에 숟가락 들 때 "김 기자님은 이거 알 거야. 이거 뭔 줄 알아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으실 때만 해도 이럴 줄 알았나.

"이모님 이거 울금이잖아요. 전 촌에서 와서 다 알아요"하니 함박웃음 지으시더니.

어머니 잘 돌보시고 돌아오시면 이제 좀 편히 쉬세요. 소일거리도 그만하시고. 그리고 손주 절대로 봐주지 마요. 허리 다 나가요.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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