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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4. 2019

<지소미아 연장> 우리가 얻은 것

<지소미아 연장> 우리가 얻은 것

오늘 낮에 안중근 의거 110주년 한중 서예전에 참가한 함세웅 신부님 인터뷰에 갔다가 역시 전시에 참가한 나름 외교 쪽에서 유명하신 Y대 국제관계학 교수님과 이야기를 좀 나눴다.
단연 주제는 지소미아였다.
공통된 생각은 3개월 뒤 내려놓아야 할 선택을 한 것은 어찌 됐든 실착이란 것이었고, 새롭게 안 사실은 워싱턴 쪽에서 감지되는 분위기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정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을 둘러싼 북한, 중국 견제 등 동북아 정세에 관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이 지소미아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어떤 심적 외교적 데미지를 입었는지에 대해서 놀랍도록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을 순 호구로 본다고 하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외교 전략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작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3개월 전 호기롭게 미국의 뜻에 반해 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한 것은 당시 미중 갈등이 한참이던 상황에서 미국의 심기를 건들기 충분했을 것이다.
이번에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한 것도 9할 이상이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건곤일척의 싸움을 진행 중이고 미국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홍콩과 무역, 대만, 남중국해 이슈로 중국을 흠씬 두들겨 패며 나름 승기를 잡아가고 있기도 하다.
지소미아는 그런 의미에서 한미일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중요한 전략적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이번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강한 카드를 한국에 내밀었을 것이다.
강한 카드 중 채찍은 방위비 분담이고, 당근은 뒤에 언급하겠다.

일부에선 외교는 명분이기 때문에 지고 이기는 것이 없고 이번 결정으로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더 큰 명분을 쌓았다고 평가하는데 나는 이 의견에는 반대한다.
사실 명분을 쌓아서 국제여론을 우리 측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면 3개월 전에 연장 결정을 했어야 맞다. 그래야 한일갈등에서 피해자 역을 맡아 동정 여론을 세게 불러일으켰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번 결정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이전 발표를 뒤집은 셈이니 오히려 명분 없는 결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결정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미치도록 싫지만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 연대를 깰 만큼 반일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착도 실착이고, 아베 정권이 연장 발표 이후 한국 수출규제는 지소미아와 별건이라고 해서 열 받는 것도 열 받는 것이지만, 나름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일단 청와대가 이번 지소미아 연장 결정을 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가장 큰 원인이다. 외교란 것이 하나를 주면 밤톨만큼이라도 얻어오는 게 있다.
나는 우리가 미국에 요구한 것이 바로 지지부진한 북미 회담의 적극적인 추진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3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지소미아 연장 결정의 한 대가로 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 그럴까?
현 정권의 지지도는 사실 북한 이슈에 따라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지소미아 연장이 아이러니하게도 북미 회담 추진의 동력이 된 셈이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국의 입김이 세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정은 잘못된 길을 빨리 돌아 나와 교착상태에 빠진 외교를 선순환으로 돌리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얻은 것은 외교는 명분이 아니라 실리이고, 힘에 의해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우리 당국자들이 느꼈다는 점이다.
사실 외교 쟁이들의 눈속임일 뿐 국제관계에서 명분이 무슨 소용인가. 철저하게 힘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외교다.

미국이 언제 명분 따져서 행동하는 적이 있던가? 미 의회에서 홍콩 인권법안이 통과됐지만, 중국과 무역협상에서 더 큰 이득이 있다면 한국에서 전두환 정권을 인정했듯 손바닥 뒤집기처럼 안면을 싹 바꿀 수 있는 게 미국이다.
외교는 명분이라는 말은 약자의 울부짖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어제 이후 미국 옆에 찰싹 붙어서 입 안의 혀처럼 굴며 우리 약을 바짝 올리는 일본을 실력으로 뛰어넘으면 된다.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이고 정부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강해질 그날까지 오늘의 치욕을 잊지 말고 간직하자.
#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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