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송의 추억>
내가 자란 동네는 완전 시골 동네인데 마을 이름이 신동리 심암이다.
그러니까 믿을 신, 마을 동. 마음 심, 바위 암. 믿음 꼴에 있는 믿음 바위 마을이란 뜻.
왜 이런 이름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동네 꼭대기에 있는 스웨덴인지 덴마크인지에서 온 선교사가 지은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나서인 것 같다.
내 기억에 동네 사람 80% 이상이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놀고, 교회에서 애들 가르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그런 활동을 많이 했다.
완전 시골교회라 헌금으로 성미(聖米)를 내고 그랬으니 요즘 지탄받는 그런 세속적인 교회는 아녔다.
그냥 마을 공동체 같은 거랄까?
나 대학 갈 때도 서울로 대학 가는데 등록금이 부족하니 동네 교회 사람들이 돈을 걷어서 장학금을 줬었다.
아무튼, 그런 동네다 보니 크리스마스를 큰 명절처럼 지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집마다 돌며 찬양을 부르는 새벽송이다.
새벽송은 청년부와 학생부 학생들이 조를 나눠 돌았는데 이때 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집집이 다 돌았다.
할머니들은 새벽잠이 없으셔서 그런지 버선발로 나와서 미리 사두신 과자를 한 움큼씩 주셨다. 이렇게 동네를 다 돌면 마대 자루로 한 10자루 정도 나왔던 것 같다.
그땐 겨울이 왜 그리 추웠는지 함박눈 펑펑 내리는 이브날 새벽송이 끝나면 다시 교회 교육관으로 모였다.
우리 교회 교육관은 마루가 건물 기둥 위에 올라 있는 형태로 밑에 공간이 좀 있다. 또 그 안을 수리하기 위해 교육관 바닥에 이 공간으로 출입이 가능한 조그만 문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과자 10자루 중 한두 자루를 꼬불쳐서 새해 송구영신 예배를 볼 때까지 며칠이고 교회에 모여 놀면서 일용한 양식으로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사님들도 다 아셨을 텐데 그냥 눈 감아 주신 것 같다.
새벽송 돌고 교회 골방에 다 모여서 마니또 같은 거도 하고, 밍크 이불 덮고 전기 놀이도 하고, 사춘기인 형 누나들은 썸도 타고 그랬다.
너무 늦게까지 놀다가 다음날 성탄예배에 단체로 빠져서 목사님한테 혼났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이브 하면 가장 생각나는 추억이다.
#크리스마스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