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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3. 2018

해보지 않고는 욕하지말자...황아재·백주부님 존경합니다

#맛객


<맛객> 힘드네요. 황아재·백주부님 존경

    아무 생각없이 썰 좀 풀면 될 줄 알았던 이번 '제1회 팔도한식 경연대회'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나 따위가 맡은 역할이 너무 커서 후덜덜했다.
    한국 방송 카메라에 중국 인기 BJ까지 동원된 이번 행사는 매우 수준이 높아서 내가 왜 여기있지? 하는 생각이 행사 내내 대뇌 안을 돌아다녔다.
    일단 경연 방식은 참가자들이 30분 이내에 음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마추어라길래 뭐 그냥 대충해도 되잖을까 했는데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다들 '초사이언'으로 변해 라메크성에서 온 거 같이 내 기를 죽였다.
    평가는 조리과정, 향·외관, 맛 이렇게 3부분으로 나눠 심사가 진행됐다.
    10가지 음식을 다 심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심사위원 4명이 집중 심사할 요리를 나눴다. 내가 맡았던 요리는 전주비빔밥(전북), 언양불고기(경남), 감자전(강원도) 이렇게 3개였다.
    30분의 조리 시간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데코레이션까지 완벽히 해서 경연 테이블에 음식을 올렸다.
    무슨 마스터세프코리아처럼 참가자들이 심사위원석 앞으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카트로 가져와서 음식에 대해 설명을 하고 맛을 보는 평가지에 점수를 매겼다.
    첫 음식은 충북 붕어찜과 더덕구이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진짜 나는 중국에서 민물고기 잘 안 먹는데 이 요리는 한국 저기 저수지나 소양강 같은 곳에 가서 먹었던 붕어찜 맛이 났다. 이성을 잡고, 흠을 잡아 보려고 굉장히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모든 음식이 이런 식이었다. 여기에 모든 음식의 평을 쓰긴 어려우니 내가 맡았던 음식평만 간략히 올려 본다.


<전주비빔밥>

    오늘 참가자분들 중에 전주비빔밥 팀이 나오셨는데 조금 운이 없는 것이 제가 전주 출신입니다. 베이징에 오기 전에 거의 한 달에 서너 번은 전주비빔밥을 먹었고, 문화부에 출입하면서 전주비빔밥 명인들과도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전주비빔밥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질 좋은 육회와 콩나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전주비빔밥은 다른 지역 비빔밥에 비해 잘 비벼진다는 점입니다. 잘 비벼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소머리 육수로 밥을 짓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렇게 밥을 지으면 쌀에 윤기가 생겨 서로 달라붙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골고루 재료들이 섞이게 되고, 제대로 된 비빔밥의 맛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전주 일부 비빔밥집은 아예 밥을 비벼서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달걀노른자를 날것으로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이유입니다.
    제가 오늘 주의해서 본 것은 얼마나 재료가 잘 섞여지도록 밥을 지었는가와 재료로 들어간 나물들의 간이 고추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였습니다.
    오늘 참가자들이 출품한 비빔밥은 지금 당장 전주에 가져다 놓아도 중상 이상의 수준에 달하는 맛이었습니다. 청포묵과 놋그릇을 쓰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외국인이 이 정도까지 맛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물 간을 정확히 맞추고, 육수를 밥물로 사용한 것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베이징에 와서 먹은 비빔밥 중 가장 전주비빔밥과 근접한 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양불고기>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사용하는 언양 불고기는, 서울식 불고기에 비해 덜 달고, 국물이 적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 이유는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일제 강점기 때 언양지역에 도축장이 있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도축장이 있는 곳의 고기를 드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먼 거리를 유통하는 고기에 비해 질이 아주 뛰어나고, 고기 그 자체로도 맛이 좋습니다.
    언양 고기가 맛있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소문이 난 것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이 들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건설 노동자들 사이에서 고기 맛이 소문이 났고, 그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언양 불고기는 전국 각지로 퍼져서 요즘에는 서울에도 언양 불고깃집이 많이 있습니다.
    언양 불고기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고기 질이 얼마나 좋은가. 또 고기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적절히 양념했는가를 중심으로 심사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불고기는 일단 간이 잘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간장 맛보다는 고기 맛이 중심을 잡고 있는 점도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직화를 사용하지 않고 프라이팬을 사용해 불향이 나지 않았던 것이 좀 아쉽습니다.
    
<감자전>

    감자전은 강판에 간 감자건더기와 또 이를 짠 감자물에서 가라앉힌 앙금에 소금을 넣어 반죽해 이를 팬에 부치는 강원도의 향토 음식입니다. 강원도 감자전은 간 감자와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데 기호에 따라 부추, 버섯, 양파 등을 섞기도 합니다.
    감자전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물기를 얼마나 적절히 빼느냐인데 물기가 많을 경우에는 부칠 때 제대로 반죽이 엉겨 붙지 않아 식감이 흐물흐물할 수가 있고, 반대로 물기를 너무 빼면 뻑뻑한 식감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는 감자 전분 또는 밀가루를 섞기도 하는데 감자만 넣은 감자전이 솔직히 더 맛이 있겠죠.
    또 감자전을 잘못 부치게 되면 약간 감자에서 나는 비린내가 나기도 하는 데요. 그래서 반죽부터 부치는 전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맛을 평가할 때도 세심하게 신경 썼습니다.
    오늘 출품된 감자전은 아쉽게도 물기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물론 굽는 과정이 제대로 돼 노릇노릇하게 구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감자전을 찍어 먹는 장에 식초가 좀 많이 들어간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평가를 하면서 느낀 점은 방송 카메라를 앞에다 들이밀고 짧은 시간에 즉흥적으로 평가를 내놔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번 경험으로 백종원 대표나 황교익 평론가 두 사람을 방에서 엉덩이 긁어가며 쉽게 평가하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 저 짧은 멘트를 하는데도 식은 땀이 주륵주륵 났다. 또 행여나 내 말 한마디가 열심히 준비한 참가자들에게 상처를 줄까 고민도 됐다. 말 그대로 극한의 직업이다.
    경연은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고, 우승팀은 전주비빔밥 팀이 차지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극찬했을 정도로 보기에도 영롱한 자태가 있고, 맛도 훌륭했다. 특히 밥을 육수로 지어 쌀에 기름기가 코팅돼서 젓가락만 써도 촤르르하게 비벼지는 것은 전주비빔밥 명인들의 가게와도 아주 비슷했다.
    이번 경연 심사를 하면서 든 생각은 이게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였다. 공부도 많이 하고, 일단 먹을 때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점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다 맛난데 잘못된 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 다행히 전라도 손맛 엄마한테 물려받은 예민한 미각 덕분에 밥값은 한 것 같다. 공적을 굳이 꼽으라면 전남팀 떡갈비에 마늘을 많이 넣은 거를 잡아내는 나름의 쾌거를 거둔 것이다.
    중국 사회자들이 나보고 굉장히 엄격하다고 해서 최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참가자들에게는 부족했을 것을 생각라니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뭐든지 해보고 욕하자. 세상에 쉬운 것 없다.
 
#맛객 #나도심사위원 #데뷔전 #너모힘들다 #황아재백주부까지말아요 #너모잼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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