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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3. 2018

'세계 맛집이 한자리에' 눈과 입이 즐거운 베이징방초지

왼쪽부터 강형구 작가의 관우 초상화, 아야 타카노 작가 작품, 양타오杨韬 작가 작품.

<맛객> '세계 맛집이 한자리에' 베이징 맛집 집합소 방초지


    오늘은 회사 이모님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셔서 쉬시는 날이다.

    이모님이 쉴 때면 우리 사무실은 멘붕에 빠진다. 평소 이모님의 화려한 요리 솜씨 덕에 잘 먹고 살다가 바깥 밥을 먹어야 하니 다들 곤욕스러워한다.

    그래서 이럴 때면 나름 좋은 식당이 있는 사무실 근처 방초지에 가서 밥을 먹는다.

    이 건물은 전에도 설명했다시피 미식가이자 예술 애호가인 홍콩 파크뷰 그룹 황젠화(홍콩명 조지 웡) 회장이 지은 건물로, 베이징에서 친환경 설계를 통해 지은 최초의 건물이자 친환경 관련 수상 경력이 화려한 유명한 건물이다.

    이곳에 오면 철별로 바뀌는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고, 특히 미식가인 황젠화 회장이 입점시킨 맛있는 식당들이 가득해 이모님이 없는 적적함을 달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황젠화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빙초지는 그 명성을 이어 오고 있다.

    황젠화 회장은 한국 미술을 아주 좋아하는 거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방초지 곳곳에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방초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에 초대형으로 걸린 강형구 작가의 관우 초상화를 비롯해 이승구 작가의 익살스러운 불테리어 조형 작품, 최정화 작가의 꽃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까지 방초지에 숨은 한국 작가의 흔적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방초지의 미술품을 관할하는 큐레이터 역시 5년 전부터 한국인이 맡고 있다.

    오늘도 가보니 불상 조형물이 식당 앞에서 우릴 맞았다. 또 그 앞에는 대형 댕댕이 작품이 안내 데스크 구조물 위에 올라가 있고, 저기 정문 쪽 벽에는 한국 작가인 강형구 작가의 초대형 관우 초상화가 떡하니 걸려있다.

황젠화 회장

    이곳 식당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황젠화 회장의 입맛을 믿기 때문이다. 황젠화 회장은 입점한 식당을 직접 다 선별하고, 철저하게 관리했다. 어떤 식당은 임대료 많이 내겠다고 해도 그의 기준을 만족 못시키면 입점하지 못했을 정도로 황젠화 회장의 맛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현재 입점한 식당들도 보면 딩타이펑, 이치도 롤케익, 카오야 명가 다중, 프랑스 식당, 대만 요리 전문점 등등등 전 세계 맛집이 총망라 돼 있다.

    그렇게 때문에 베이징에서 맛집 찾기에 익숙지 않다면 방초지를 찾아서 아무 식당이나 골라 들어가면 된다.

    오늘은 혼자 주말 당직을 할 때 자주 가던 일본 라멘집에 사무실 식구들을 데려갔다.

    1진 선배는 휴가여서 빠지고, 2진 선배와 나, 그리고 직원 1, 2, 3호 5명이 12시가 조금 넘어 건물에 도착.

    여기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이 길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오늘 갈 라멘집인 '하카타 이코우샤'는 항상 줄이 10m 정도 서 있는 집이다.

    중국에 있는 라멘집이 뭐 얼마나 맛있다고, 줄을 서나 싶겠지만, 이 집은 일단 내가 가본 일본 본토의 라멘과 비교해도 얼추 비슷한 수준의 흉내는 낼 줄 안다.

    내가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 입맛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황젠화 회장의 미식에 대한 열정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처음 이집에 오기 때문에 주문은 내가 맡아서 했다.

    먼저 육수를 골라야 하는데 육수 종류는 전통 돈코츠 라멘처럼 진한 국물, 좀 가벼운 국물, 흑임자를 넣은 국물, 약간 매운 국물, 아주 매운 국물 5종류다.

    나는 보통 통풍 때문에 가벼운 국물을 선호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도 처음 오다 보니 나를 따라 다 통일했다.

    그다음에는 소금간, 면 익힘 정도, 파 유무, 토핑, 사리 추가 여부 등을 고를 수 있다.

    나는 항상 간, 익힘 등은 보통으로 통일하고, 파는 반드시 넣으며, 차슈와 반숙 계란 토핑을 추가한다. 이미 계란 토핑이 들어가 있지만, 선계란 후면발, 선면발 후계란을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계란을 하나 더 시켜서 라멘 먹기 전에 계란 하나를 먹고, 면을 다 먹고 나서 또 하나를 먹고, 이렇게 먹는다. 하하하하.

    그리고 사이드는 감자 샐러드, 가라아게, 야끼만두를 시킨다.

    나는 고독한 미식가에서 감자 샐러드를 본 뒤로는 항상 일식집에 가면 감자 샐러드를 시켜 먹는데 감자 샐러드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 그 일식집의 간이라든지, 재료 선정 수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 감자 샐러드는 간이 슴슴하고, 감자가 완전히 으깨지지 않은 특징이 있다. 그만큼 간을 잡을 때 손님이 직접 간을 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두는 배려를 하는 집이라고 보면 된다.

    왜 이집을 혼자 당직할 때 자주 오냐면, 여기는 테이블이 따로 없고 혼밥족을 위한 스타일로 인테리어가 돼 있다. 그래서 일행이랑 같이 가도 마주 보고 앉지는 못하고 옆으로 나란히 앉아야 한다.

    아. 또 이집에 오면 하루 30인분만 한정으로 파는 면이 있는데 2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아마 수타면 같은데 그 정도 기다렸다가 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라멘은 토핑만 얹어져서 나오기 때문에 테이블에 마련된 매운 기름, 참깨, 절임 반찬, 맛술(?) 등을 자유롭게 넣어서 DIY로 만들어 먹는 맛이 있다.

    처음 사진과 다 만든 뒤 사진을 보면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이드는 가라아게는 치킨인데 맛을 물어 뭐하겠나. 너무 맛있다. 특히 염지를 한 것인지 자체적으로 간이 배어 있어 별도로 나오는 소금을 굳이 찍어 먹지 않아도 된다. 감자 샐러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 기준으로 약간 더 으깨면 좋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그리고 일식 군만두. 나는 일식 군만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여기 거는 그래도 맛있게 먹는 편이다.

    식사를 다 마쳤으면, 멍 때리고 있지 말고 빨리 계산을 마치고 나와야 한다. 안 그러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욕을 들을 수도 있다.

    다 먹고 나오면서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별로 맛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밀려서 테이블을 따로 앉았는데 아마도 그냥 나온 그대로 먹었던 모양이다. 하하하하. 미안. 난 맛 나게 먹었어.

    오늘의 후식은 막내 직원 숙연이가 가져온 대추가 호두를 만났을 때다. 왕대추 안에 씨를 빼내고, 호두를 박아 넣은 거다. 보통 높은 확률로 맛이 없기 때문에 안 먹는데 귀염둥이 막내가 줘서 한 알을 대추차와 같이 먹었다. 그런데 의외로 엄청 맛이 좋았다. 대추+대추 콜라보를 하니 오던 감기도 도망가 버릴 맛이다.

    지난해 조지 웡 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대서 깜짝 놀랐다. 이 자리를 빌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다. 세상은 맛객들이 있어 아직 살만하다.

    베이징 오시면 방초지 꼭 와보길 바란다. 멋진 예술품도 많고, 맛집도 많아 눈 호강 입 호강 다 할 수 있다.


#맛객 #방초지 #황젠화회장 #맛객은영원하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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