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
을밀대. 드디어 왔다.
전에 한번 평냉 성애자 선배 손에 이끌려 온 적이 있지만 그땐 '이런걸 왜 먹나?'하는 생각에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뒤로 평냉맛을 좀 알게 됐을 때는 남포면옥이라든지 봉피양에 다녀서 을밀대의 맛이 기억이 나지 않았고, 딱히 갈 필요도 못 느꼈다.
베이징에 간 뒤로 이따금 평냉 맛이 생각날 때면, 그나마 비슷한 고바우에 가서 모조품(?)을 즐겼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러던차 남북교류가 활발해 졌고 평냉이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하며 그맛이 궁금해 베이징의 북한 식당을 전전하며 평냉의 본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여러 북한 식당을 다녔지만 대부분은 수준 미달의 냉면을 내놨고, 돌고돌아 평냉 마니아 선배의 추천을 받아 북한대사관 앞 은반관에 정착하게 됐다. 이때 경향신문에서 서울시내 평냉에 관한 분석 그래픽 기사가 대히트를 치게 됐는데 문득 이 그래픽을 보면서 지금의 평양 옥류관 냉면이 원조일까? 아니면 실향민들이 보존한 서울(?) 평냉이 원조일까? 라는 궁금증에 빠졌다.
그때 서울에서 가장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을밀대가 떠올랐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제대로 그맛을 보고 싶었던 나는 이번 한국행의 한 코스로 을밀대를 잡았다.
오늘의 메뉴는 수육 대자, 녹두전, 양지탕밥, 마무리로 평냉을 시켰다.
수육은 얇게 썰어 육수를 자작하게 채운 뒤 마늘과 파채를 넣어 내온다. 맛은 슴슴하면서도 은은하게 구수하니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평양 옥류관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낸다는 베이징의 은반관의 수육과 비교하면 간이 더 약한 편이었다.
녹두전은 으레 우리가 먹는 녹두전 맛으로, 고기를 갈아 넣은 것이 은반관이 녹두전 위에 돼지 비계를 얹어 붙이는 것과 달랐다. 맛은 내 입맛에는 은반관 것이 한 수 위였다.
양지탕밥은 굳이 은반관과 비교하면 온반에 대비 되는 것인데 거의 다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달랐다. 온갖 고명이 얹어 나오는 은반관에 비해 모양새는 단촐했지만, 내 입맛에는 슴슴한 을밀대 것이 더 좋았다.
대망의 냉면. 냉면은 두 냉면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음식이었다. 을밀대 냉면은 다대기가 전혀 없고, 고명도 무채와 오이, 계란, 수육, 배가 아주 소량이 들어가고 육수와 면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다. 반면 은반관의 평냉은 온갖 고명을 켜켜이 쌓고, 육수도 좀 더 간이 되고, 다대기 양이 많고, 면은 더 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그럼 어떤 것이 원조에 더 가까울까? 내 생각에는 서울 평냉이 예전 평냉에 더 가까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평양 시민의 입맛에 따라 변해온 은반관 냉면에 변절자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나는 면스플레인과 육수플레인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두 냉면 중 원조를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 내 입맛엔 둘 다 맛있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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