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3. 2018

너무너무 행복할 때 나는 최악을 생각한다

#단상

<너무너무 좋을 때 최악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단상>

    '상한가'
    SNS 글쓰기를 시작하고 난 뒤 내 생활은 소위 상한가를 치고 있다.
    무슨 팔자에 없는 방송 출연에 심사위원에 미라클한 일이 지속하고 있는데 으레 못된 버릇이 하나 불쑥 튀어 나왔다.
    '불안증'
    지난한 삶을 살면서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타고난 낙천성이다. 무슨 일이 나도 차악의 솔루션을 생각하고 온몸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나 피가 뚝뚝 떨어져도 그 한 점만 바라보고 묵묵히 걷는 끈기와 아무리 많은 생채기가 나도 '별거 아닌데?'하고 넘기는 낙천성은 나를 살게 해준 원동력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로 온통 뇌를 채워 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최면 상태랄까.
    문제는 역의 상황에서도 이런 성질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미칠 듯이 행복하고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을 때 항시 최악을 생각한다. 전주로 내려와 집 안을 추슬렀을 때 이 불안증이 돋았고, 몸이 아팠다.
    몸이 좋아지고, 기자 일이 손에 붙었을 때 갑자기 공황증이 찾아 왔다. 어디론가 떠나야지 하고 베이징에 왔는데 김정남이 죽고, 사드가 터지고, 트럼프가 오고, 김정은도 3번이나 베이징에 오고, 사람이 갑자기 하나 줄면서 혼돈의 아노미를 맞았다.
    돌고 돌아, 요즘은 너무 일이 잘 되고 좋은데 마음 한켠에서 이 몹쓸 불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동요 없이 잘 버텨내는 나는 정말 정말 감사하고, 어여쁘기까지 하다.
    반대로, 좋은 일이 있을 때 제대로 즐길 줄 모르고 불안하기만 한 나는 꼴도 보기가 싫다.
    그래서 '자랑교'의 교지를 생각하며, 또 '어른은 어떻게 돼' 박철현 작가님을 생각하며 자랑을 해봤다.
    음. 어색하고 좋은데? 라는 생각과 집어치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안 어울려. 몸에 안 맞아. 그만하자. 양화대교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데 엄마가 떠오르는 것이 기분이 요상타.
    울엄마는 돈이 없을 때, 그러니까 극도로 돈이 없을 때 묘한 재주를 발휘해 집 안을 이끌어 오셨다.
    일례로 1997년 가을 IMF가 조선반도를 뒤덮었을 때, 우리 집은 어김없이 아버지의 실직을 맞았다.(이런 거 빠지면 한량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원래 별로 바깥 일을 안 하시기 때문에 실직에 따른 큰 충격은 없었지만, 문제는 은행 빚이었다.
    다행히 당시 온갖 사업체가 부도를 겪으면서 땡처리하는 물건들이 시장에 쏟아져 생필품 가격은 오히려 내려가 우리 집 생활비는 되레 줄었다. 하지만, 20% 후반대까지 치솟은 은행 이자는 카드 돌려막기로 살아가는 우리 집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엄마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당시 우리 가계상황을 살펴보면 엄마 월급은 부업 포함 70~80만원 선에 불과했다. IMF의 후폭풍이 거세게 불던 98년에 나는 막 고딩이 됐고, 누나도 지역 국립대에 입학해 새내기 생활을 시작했던 때다.
    기본적으로 매달 나가야 하는 돈만 카운팅 해봐도 카드이자 30만원, 집세 17만원, 누나나 내 용돈 13만원 등 필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누나와 내 등록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고, 그 나머지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4인 가정에 20만원으로 생활이 가능하긴 한가? 혹시나 지인의 경조사가 생기기라도 하면 흰 봉투를 앞에 두고 고뇌하던 엄마의 모습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반대로, 지금 울엄마를 보면 빚도 없고, 생활비도 넉넉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내가 있기 때문에 재정에 여유가 좀 생겼다. 말 그대로 흑자 재정. 이런 상황에 놓이니 어떻게 하실 줄을 모른다.(그래서 그케 여행만 주구장창 다니시는 건가)
    엄마는 주변에서 누가 돈이 급하다면 빌려주기 급급하고, 심지어 나한테 꿔다가 빌려주시기까지 한다. 한번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짜증을 다 낸 적이 있다. 말 수가 워낙 없는 양반이라 대꾸는 안 하셨는데 이제 생각하니 옛 생각이 나서 그러시는 거 같기도 해서 짠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 요즘 너무 행복에 겨워 사는 입장에서 이 넘치는 행복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감당을 못하는 나를 보면 엄마를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치면 나누면 된다. 나누다 보면 좀 나눔이 부족하게 되니까. 어디서 빌려다가 나누겠지? 그러면 나는 또 '마이너스'. 그럼 내 주특기 아닌가. 그럼 또 채우고, 넘치고, 다시 퍼주고, 부족하면 다시 채우고, 이렇게 선순환시킨다.
    생각해보니 찢어지게 가난한 순간을 넘어 섰을 때부터 엄마는 남을 도우셨던 거 같다. 시작점은 내가 삼수를 마치고 집 빚을 다 털고 상경을 앞뒀을 무렵이니 2005년쯤 됐을 거다. 지금은 내가 다 건네받아 살을 붙인다고 붙였지만, 당시 엄마만큼 대범하게는 못하는 꼴이니 새삼 마더의 대범함에 경외감을 금치 못하겠다.
    현인은 보통 저어기 TV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경우가 많다. 행복이 넘쳐서 부담스러우면 바가지로 휙휙 텀벙첨벙 퍼내 버리자. 불안증이 시원~하게 가셔버리게.
    변태같고 좋은데?
#단상 #행복해 #불안증은이제그만 #거지로사는게조은M성향 #아항~


++오늘 수능 날이군요. 얼마나 불안할지 잘 압니다. 네. 3번이나 봤으니 얼마나 잘 알겠어요. 너무 한 번에 내 인생 결정 난다 생각하면 더 불안하니 넉넉히 '정 안 되면 저 아재처럼 3번 보지 뭐'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유 있게 보세요. 살면서 대학도 매우 중요하긴 한데 것보다 바른 인성을 가지면 좋은 학벌보다 더 인정받고 예쁘게 사시는 분들이 더 많더라고요. 모를 땐 3번입니다. 화이팅.

++돼지터리언 베이징 방랑기 구독해주세요.

brunch.co.kr/@kjbsem 

에세이 시리즈 <단상>

생생한 베이징 특파원 취재현장 <취재현장>

동물이야기 <초보 댕댕이시터의 보모일기>

지금 들러보세욧.



이전 21화 브런치 작가 응모에 낙방한 것에 대한 단상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막막 답답' 베이징 수감 일기1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