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6. 2018

브런치 작가 응모에 낙방한 것에 대한 단상

#단상

<브런치 작가 응모에 낙방한 것에 대한 단상>

    '두근 두근, 두근, 두근, (클릭) 꽝'
    책에 넣을 글들을 모아 볼까 해서 도전한 브런치인데.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쓴맛을 봤다.
    이미 글을 쓰는 직업인 기자를 하는 입장에서 꼭 작가를 해야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 얼마 만에 무언가 목표로 한 것에서 미끄러져 본 건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10년 모 방송사 PD시험 임원 면접 때 고배를 마신 뒤로 거의 9년 만에 낙방의 맛을 본 것 같다.
    사실 나는 모든 것이 뒤처지는 캐릭터다. 무슨 겸양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일단 수능을 세 번이나 보며, 죽기보다 싫다는 삼수생 생활을 해봤고, 초딩 때는 받아쓰기에서 '으'점을 받은 적도 많다.
    '으' 점은 한량인 우리 아빠가 빵점 짜리 시험지를 보고 충격받은 나를 위로하려고 붙여준 빵점 호칭법이다. '으'의 모양이 '0+='와 비슷해 생겨난 우리집 만의 은어다. 용례로는 "진방이 또 으점 받았네. 크흡"이 있다.(ㅡㅡ 이게 웃을 일인가. 하여튼 아빠도 츠암내)
    이런 것 외에도 나는 토익, 수학, 사회과학 서적 등등을 공부하며 수많은 난관을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으로 넘으며 살아왔다.
    어제 브런치 작가 신청 낙방 결과를 받아 보면서 문득 고딩 때 수학 선생님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나의 고난 극복 노하우는 항상 수능 모의고사의 구멍 과목이던 수학을 정복한 계기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모교에는 이경근 샘이라고 당시 울학교 수학 분반 중 젤 꼴지 반을 맡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이경근 샘은 제법 똘똘한 내가 자신의 반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시더니 수업이 끝나고 나를 교무실로 불러 파란색 표지의 '홀로서기 수학'이라는 책 한 권 건네주셨다. 교무실에서 내게 책을 주시며 샘은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풀어봐"라고 쿨하게 한마디를 던지시고 날 교실로 돌려 보내셨다.
    '이건 또 먼소린가?' 이 두꺼운 것을 언제 다 푼 데. 구구단도 겨우 외우는 판국인데.
    그래도 공짜로 문제집까지 주셨는데 말을 안 들을 수도 없어 그날부터 1페이지부터 230페이지까지 대략 3개월에 걸쳐 풀었다. 워낙 수학을 못 했기 때문에 한 절반 정도도 제대로 못 푼 거 같은데 어쨌든 다 풀었으니 문제집을 들고 선생님께로 갔다.

    "다 풀었는데요. 슨생님"(새 문제집 주시나? 기대 만발)
    "어. 그래? 그럼 처음부터 다시 풀어와"
    "예? what? 什么?난다요?"
    "어. 푼 거 다시 한 번 고대로 풀어 오라고"
    
    머리는 나빴지만, 끈기는 있었던지라 또 한 달 반 정도가 걸려 문제집을 다 풀어갔다. 그간 모의고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뭐 여전히 수학 성적은 80점 만점에 10점대 후반~20점대 초반 수준을 유지했다.(그냥 3번으로만 찍으면 21점 정도가 나온다는 사실에 당시 엄청 충격을 받았었다 ㅠㅠ)
    '아. 시키는대로 하는데 왜케 안 늘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슨생님께 다 푼 문제집을 들고 찾아갔다.

    "슨생님, 또 다 풀었는데요"
    "어. 그래? 그럼 다시 한 번만 더 풀어 볼까?"
    "예? 혼또니? 쩐더마?"
    "ㅇㅇ. 혼또"
    
    '아씨. 뭐야. 새 문제집 주기 싫어서 그르시나. 걍 내가 사서 풀까'라고 생각했지만, 답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세 번째 숙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보름 만에 문제집을 다 풀었다. 세 번째 풀다 보니 안 보이던 수식과 공식들이 눈에 들어왔고, 의미 없어 보이던 숫자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들고 내 눈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씨. 뭔가 간지떼루 할 거 같은데?'. 걍. 마저 한 번 더 풀어 보자는 생각에 자율주행으로 일독을 추가 진행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수학책을 한 차례 더 클리어한 뒤 대망의 모의고사 날. 결과는 똬란~.
    '61점'
    대~한민국. . 대~한민국. .
    그 뒤로 자신감이 붙은 나는 성적이 쑥쑥 올랐고, 고3 수능에서 수학에서 3문제만 틀리는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으나 과욕을 부리는 바람에 거짓말처럼 연달아 재수, 삼수를 하게 됐다.(잉? 북산 데스카?)
    뭐 결과는 좀 씁쓸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세상에 안 되는 것 없고, 열 번 찍으면 안 넘어가는 것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뒤로 대학원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할 때, 이직한 뒤로 생각과 달리 드럽게 기사를 못 쓰는 스스로에게 좌절했을 때, 이 교훈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다.
    영화 '넘버3'에 보면 불사파 대장 송강호의 명 애드립 대사 중 이런 게 있다.

    '최영의라고 전세계를 돌며 맞짱을 뜨신 분이 있다. 이 분 스타일이 이래. 코쟁이랑 맞짱 뜰 때도 응? 딱 나타났다. 헤이 존슨? 유 로버트 존슨? 그러고 뚜벅뚜벅 걸어가. 막 걸어가. 그러면 뭐야? 하면서 피하게 돼 있어. 사람은 원래 그래. 손이 올라가게 돼 있어. 그러면 최영의 이분이 딱 잡어. 그냥. 잡고. 이 팔은 네 손 아냐. 이러면서 X라게 내려치는 거야. 팔 치울 때까지 어? 무대뽀 정신. 무대뽀. 그게 필요하다'
    
    그렇다. 무대뽀 정신. 나는 이 무대뽀 정신으로 도저히 줄 것 같지 않던 빚도 탕감하고, 철벽인 북한 인사들도 취재하고, 따순 봄이 오면 예쁜 책도 출간할 것이다.
    어제도 브런치 작가 등록 실패에 관해 짧게 페북에 소회를 남겼지만, 살면서 웬만한 실패는 다 겪어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실패하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꼭 극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력 없음을 자책하기보다는 '뭐 또 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내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상대가 아직 나를 못 알아본 것에 속상해 하지 말고, 내가 부족하다면 실력을 채우면 될 일이고,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안 하면 된다. 그깟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 있는가. 그냥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문득 어제 결과 통지서를 메일로 받아 보는 데 고딩 때 수도 없이 풀었던 너덜너덜한 홀로서기 수학책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언제부터 잘 닦인 아스팔트 길로 달렸다고, 이래야 나 답지' 간만에 기분 좋은 도전 상대가 생긴 거 같아 약간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넘어졌으니 쉬어가는 셈 치고, 조금 더 슨배 작가님들의 글을 꼼꼼히 읽어 봐야겠다.
    아주 페북서 잘흔다 잘흔다 소리 듣더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려던 참에 제대로 꿀밤 한 대 맞았다고 생각해야지.
    아. 꿀밤 이야기하니까. 생율밤을 쪄서 백두산 꿀에 재서 먹고 싶네. 츄릅.
#단상 #브런치테니스끄적끄적 #데스노트 #복수할거야 #나애리이나쁜기지배 #승패는병가지상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이렇게 쓴 날 재응모 합격 통보를 받았다 ㅡㅡ


이전 20화 아픔을 호소하는 SNS글을 바라보는 단상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막막 답답' 베이징 수감 일기1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