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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03. 2018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달다

#단상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나에 대한 단상>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취한 상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다.

    기자들은 술을 진탕 먹은 다음 날 아침 혹은 술자리가 한참 무르익는 도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기사를 쓰기도 한다.

    이때는 글이 술술 잘 써지는 기자도 있고, 전혀 주술구조가 안 맞아 곤혹스러워하는 기자도 있다. 나는 전자 쪽에 가깝다.

    술을 마시면 글이 좋아진다니 무슨 도연명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데 뭐 그런 뜻은 아니다. 단지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평소 닫아 두었던 마음과 머리의 빗장을 풀어 버리기 때문에 훨씬 유연한 글쓰기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 검열'. 

    '에이 나는 그런 것 없어요. 자유 대한민국에서 무슨 쌍칠년도 소리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자기 검열의 굴레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도 꿈과 희망의 나라 자유 대한민국에 있을 때는 잘 못 느끼고 지냈는데, 온갖 행동과 말과 심지어 기사까지 통제하는 중국에 온 뒤로는 왜 자기 검열이 생기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중국에 있으면 언론의 자유가 있는 외신 기자들마저도 자꾸만 표현을 가다듬게 되고, 혹시나 기사에 대해서 항의를 받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무슨 중국 정부에서 해코지라도 한단 말입니까' 라고 이어서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비자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중국은 언론인 비자가 따로 있다. 다른 국가도 물론 따로 있겠지만, 중국에서의 언론 비자와는 조금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중국 언론인 비자의 타입 코드는 'J'. 영어로 'journalist'가 아니라 중국어로 기자를 뜻하는 '記者'의 병음 표기가 '지저'(jizhe)라서 J코드를 쓴다. 장난 같지만 진짜다. 그래서 유학생 비자는 'X', 중국어로 학생을 뜻하는 '學生'의 병음이 '쉐성'(xuesheng)이라서 X다. 하나 더 말하면 여행 비자는 'L'인데 나는 처음에 'leisure'를 따서 'L'인줄 알았는데 중국어로 여행이 旅行, 발음으로 쓰면 '뤼싱'(lvxing)이기 때문에 L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이 'J비자'란 것이 아주 골때린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기자 명함을 가지면 굉장히 편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뒤에서는 욕을 많이 먹지만, 앞에서는 친절하기도 하고, 약간의 편의를 봐주기도 하고 그렇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온갖 감시의 대상이 되려면 J 비자를 가지고 다니면 된다. 예를 들어 가족과 여행을 가서 호텔 체크인을 할 경우에도 J 비자의 경우는 지역 공안에 다 보고가 된다. J 비자를 호텔 체크인 카운터에 내밀면 객실 배정에서부터 동행자까지 모든 정보가 다 데이터로 남아 보고가 되는 것이다.

    설마요? 라고 하겠지만, 진짜다. 그리고 여행 지역이 제한된다. 분리독립 움직임이 있는 신장(新疆), 티베트(서장, 西藏) 같은 지역은 여행 제한이 되고, 일반인도 물론 여행사를 통해서 방문 허가 절차를 받지만, 기자의 경우에는 중국 당국에 고지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혼자서 개인적인 여행을 하려고 해도 일단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허가 단계에서 반려를 당할 확률이 99%다. 그래서 일부 서양 기자들은 중국 당국의 눈을 피해 티베트나 신장 지역에 몰래 잠입 취재를 나섰다가 다음번에 언론인 비자를 못 받는 '탄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꽤 봤다. 언론인 비자를 못 받은 상태에서 취재활동을 하면 중국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고, 재입국이 정도에 따라 2~5년 간 제한되기도 한다.

    아니 무슨 언론인 비자를 임기 동안 한 번만 받으면 되지 계속 받아야 하느냐고 궁금해할까 봐 부연하자면, 중국 외교부는 외신기자들에게 매년 비자를 갱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다른 일반 기업 주재원들은 임기 동안 한 번 비자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타이트하게 관리를 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J 비자로는 대학원 등록을 못 하도록 규정을 바꾼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학업마저 병행하기도 어렵다.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기사에 반영되는데 티베트나 신장 지역의 분리독립 투쟁 기사와 류샤오보와 같은 인권운동가 기사를 쓸 때면 자연스레 움츠러들게 된다. 내 안에서 자기 검열이 작동해 문구나 단어 선택 등에서 절제와 선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중국 외교부는 이러한 이슈가 브리핑에서 거론될 때면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있고, 중국 국내법에 '따르기만' 하면 외신 기자들의 어떠한 취재행위도 가로막지 않는다는 궤변을 토해 낸다.

    다시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술을 마시면 이 자기 검열을 작동시키는 뇌의 특정 부위가 마취가 되면서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이 해방된다. 그러면서 '1~10'까지 한계를 두고 글을 쓰던 사고 영역이 '-10~20'까지 세 배가량 확장되게 된다. 그러면 딱 세배 자유로운 표현이 나오느냐. 아니다. 곱하기 3이 아니라 3 제곱만큼 글이 자유롭게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평소 3만큼의 글쓰기 실력이 있다면, 제대로 술을 마시고 필을 받으면 '9'가 아니라 '27'의 필력이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아니, 그렇게 좋으면 만날 술을 마시고 글을 쓰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할도 있지만, 그러면 간 질환에 걸려 죽거나 뇌가 알콜에 절어서 나중에는 글을 쓸 수 없게 되고, 가볍게는 밥상에서 수저를 들 때 손을 달달달 떨게 되는 수전증을 겪을 수 있으니 그런 짓은 하지 말도록 하자.

    그래도 나는 가끔 이렇게 기분 좋게 취할 때면 핸드폰을 켜고, 이런 글 저런 글을 적어 보는데 이유는 하나다. 얻어걸리면 꽤 그럴싸한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에도 술자리에서 기사를 쓰는 데 일필휘지로 솨라락 기사가 써지는 경험을 한적이 있다. 물론 열에 아홉은 오타가 수두룩하고, 문장에 비문이 많이 섞이게 돼 데스크의 전화를 받게 되는 일이 허다하지만 말이다.

    그럴 때면 그냥 "아. 죄송해요. 술자리 나와 있는데 기사 처리해달라고 그래서 그러네요. 제가 취재원들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하면, 뭐야 이 새끼 쉬는 데 일 시켰다고 매기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데스크가 "응응. 어서 마셔, 알아서 고칠게"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항상 그렇듯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사설이 길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쑥스럽거나 혹은 개그 본능을 발휘하고 싶어서 판을 까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나는 지금 어제 거나하게 마셔서 취했고, 흥에 겨워서 핸드폰 자판을 두들기고 있고, 어제 한국에서 날보러 베이징까지 날라온 멋진 형을 만나서 나눈 깊은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다.

    취중에는 진담이 잘 나오는 법이다. 바람이 제법 찰 텐데 단 것을 보니 글이 아주 잘 써졌나보다.

#단상 #취중진담 #술을먹고이태백이돼보자 #그러다골병들어일찍세상하직한다 #오늘도잼나게놀아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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