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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04. 2018

베이징에 가면 끝내주는 '모던 한식당'이 있다

#맛객  #모던한식 #한식세계화



    "이런 거 왜 만드세요?"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한식 하면 직화구이, 비빔밥, 된장찌개, 떡볶이, 김치, 불고기밖에 없다는 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습니다"    




    국제도시 베이징에서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보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은 세계 음식의 각축장인 이곳에 한식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불고기, 삼겹살, 삼계탕, 비빔밥 등이 여전히 인기가 있지만, 단품으로 구성된 메뉴에 아쉬움을 호소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는 너무 맛이 좋고, 건강한 느낌인데 코스 구성이 제대로 안 되거나 여러 음식이 나와도 주식(밥류)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예를 들어 불고기, 된장찌개, 생선구이, 삼겹살, 비빔밥, 삼계탕 등으로 코스를 짤 경우 하나같이 한 가지만 먹어도 배가 찰 만큼 여백이 없고, 연달아 코스 요리처럼 먹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쌀밥에 반찬이나 탕을 곁들이는 한국 음식이 코스를 구성하기 쉽지 않다는 소리다.

    일정 부분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아니 그게 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중국인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일본 요릿집은 베이징 곳곳에 있고 장사도 굉장히 잘 되는데 한국 음식점은 그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음... 한식은 한 가지만 먹어도 배가 차는 경우가 많고, 여러 음식을 즐기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무슨 소리 한정식집이 있지 않은가?'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한정식을 가져다가 외국에 식당을 차리면 잘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재료 공수와 시간을 오래 들여서 만드는 발효음식 등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고를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긴 하지만, 현지 입맛과 현지 음식문화에 맞춰 현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중국을 예로 들면, 전채요리부터 채소볶음, 탕, 메인 요리인 육류·해산물 요리, 주식(면·빵·밥), 후식을 함께 즐기는 음식문화를 갖고 있는데 한식을 여기에 맞춰 재구성해보자는 거다.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하겠어? 응. 가능하다.

    베이징 시내에 30, 40대 중산층이 모여 사는 주거지구 지우롱산(九龙山)에는 한 모던 한식당이 있다. 한국의 대청마루 할 때 '마루'를 따서 MARU라는 이름을 지은 이 식당의 메뉴는 한식. 그런데 정통 한식은 아니고, 퓨전 형식의 한식이다.

    '에이, 퓨전 한식 누가 모르나. 그 끔찍한 혼종들이라니'라며 염증을 일으킬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식당에 가본다면 그런 말은 고이 접어서 호주머니 속에 넣어야 한다. 퓨전이라고 해도 다 같은 퓨전이 아닌 법. MARU는 '모던' 한정식으로 퓨전과 구별된 자신을 규정한다.

    이 식당의 주방을 책임지는 '세프'는 바로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안현민 세프다. 설명대로 한국 사람들은 안현민 세프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라면 특히 젊은 사람들이라면 안현민 세프를 모를 수가 없다. 왜냐면 안현민 세프는 텐센트에서 판권을 사들인 중국판 '냉장고를 부탁해'의 최다 우승에 빛나는 유명 세프이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음식을 먹는 사람 못지않게 그와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렇다고 이 식당이 그의 유명세만으로 유지가 될까? 아니다. 음식 맛과 음식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이런 유명세를 더 빛나게 만든다.

    일단 이 곳은 식기부터 메뉴 구성, 독창적인 요리, 또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면서도, 한국인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특별 레시피가 손님의 발길을 붙잡는다.

    뭐가 다른 걸까? 그래서 직접 먹어 봤다.

    일단 오늘의 메뉴는 전원 야채샐러드, 액젓 토마토 샐러드, 보쌈 모둠 세트, 약재 삼계탕, 된장 소스 양배추 구이, 디저트로 인삼 무스, 음료는 한국적 색채가 강한 복분자 탄산음료다.

    먼저 이 집의 시그니처 요리가 돼 가고 있는 전원 야채샐러드를 보면 안현민 세프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샐러드는 전원 야채와 소스를 버무린 샐러드를 한국에서 즐겨 먹는 쌈 채소 상추에 싸 먹는 요리다. 삼겹살에 익숙한 중국인에게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게 쌈을 싸 먹게 재탄생시킨 거다. 맛 역시 샐러드를 따로 먹으면 약간 간이 강한 느낌이 있지만, 상추로 쌈을 싸면 간이 적절히 중화하면서 독특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또 부표를 그릇에 부착해 샐러드 틈으로 물을 부으면 샐러드 곳곳에 박힌 미니 당근이 쑥쑥 올라오는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다음 이 집의 비밀 병기인 토마토샐러드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예전 한 쇼프로의 벌칙으로 활용되던 까나리 액젓을 샐러드드레싱으로 이용한 것인데 적정한 양의 까나리 액젓에 간장으로 맛을 끌어올리고, 살짝 으깬 이탈리아 토마토 2종류와 중국산 토마토에 까나리액젓 드레싱을 뿌려 준다.

    '으웩. 이게 맛있다고?' 하겠지만, 액젓의 짭조름한 맛과 간장의 풍미, 그리고 토마토와 그 위에 얹어진 치즈를 한입 물면 굉장히 감칠맛이 나면서 입안 가득 식욕을 돋운다.

    보쌈 역시 MARU의 메뉴판에 오르면서 획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보쌈을 먹을 때 한 상 가득 차려야 하는 부재료들은 이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고기와 함께 한입 크기의 동글동글한 쌈으로 싸여 3단 디저트 접시에 담겨 나온다. 이렇게 하면 한식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었던 '배부름'을 방지할 수 있고, 엄선된 쌈 레시피로 균질한 맛을 낼 수도 있다.

이것이 깻잎 쌈. 중국인들은 우리가 고수를 잘 못 먹듯 깻잎을 못 먹지만, 이렇게 생잎이 아닌 김치로 담근 깻잎김치는 잘 먹는다.

    이 집은 일반적으로 삼겹살이나 앞다릿살을 이용하는 보쌈 고기에 항정살을 추가해 식감을 높이고, 찬 음식에 약한 중국인들의 특성에 맞춰 차가운 성질의 돼지고기를 삶을 때 생강을 많이 넣어 위에 부담까지 줄였다. 말 그대로 현지화 갑인 음식인 셈이다.

    삼계탕 역시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닭으로 먼저 육수를 낸 다음에 삼계탕용 닭을 육수에 넣어 삶아 육수를 한층 더 진하게 만들었다.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양성'(養生·웰빙) 트렌드에 맞춘 현지화라 할 수 있다. 이 삼계탕에는 인삼, 당귀, 황기 등 약재도 들어가 국물만 떠먹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인 된장 소스 양배추 구이도 성공적인 한식 세계화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콩장(醬)류에 익숙한 중국인들에게 된장 맛은 그리 불편한 맛이 아니다. 이런 된장을 이용해 특제 소스를 만들고, 된장 소스의 짭짤한 맛에 양배추를 구워 들큰들큰한 맛을 더해 단짝 조합을 만들어 낸다. 건강하지 않은 단짠이 아니라. 진짜 웰빙스러운 단짠의 맛을 된장 소스 양배추 구이에서 느낄 수 있다.

    디저트 역시 아주 신경을 쓴 태가 많이 난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는 고구마 케이크와 딸기 수비드 디저트는 언뜻 보면 유명 다지트 가게에서나 볼 법한 디저트다. 여기에서 한국적인 색채가 녹여져 있는데 그 포인트는 바로 홍초를 조려 만든 소스다. 이렇듯 마루의 음식들은 손님이 알게 모르게 한국적 색채를 품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 오면 내가 가장 즐기는 음료를 소개해 본다. 이 음료는 보통 식당에서 맥주나 탄산음료를 많이 시키는 중국인들이 한 입만 맛보면 눈에 하트가 나올 정도로 맛이 좋다. 복분자 식초에 탄산을 가미해 만든 것 같은 이 음료의 이름은 이스파한 복분자 스파클링이다.

    이스파한?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그렇다. 디저트로 유명한 피에르 에르메 세프의 이스파한 마카롱의 그 이스파한이다. 이 이스파한 마카롱에는 리찌, 산딸기, 장미가 들어가는데 이를 마카롱이 아닌 음료에 적용해 탄산수를 곁들인 것이다. 특히 산딸기 대신 한국 복분자 식초를 넣은 것이 키 포인트다. 짙은 붉은빛 복분자 색이 일단 눈을 사로잡고, 맛 역시 한국적인 맛이 나면서도 탄산 감이 있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비슷한 레시피로 만든 백향과 스파클링은 환한 노란색이 매력적이어서 이 집 음료 중에 이 둘이 가장 인기가 있다.

    MARU의 음식들을 보면서 '아니 세프가 하는 집이니 당연히 맛있고, 비싸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집의 음식은 중국 중산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음식 가격은 단품당 4000∼8000원 선에서 대부분 형성돼 있고, 메인 디시가 10000원 안팎 수준이다.

    안현민 세프가 중국에서 유명세를 이용하면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고집스럽게 레시피를 연구하고 갈고닦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런 거 왜 만드세요?"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돈을 벌려면 얼마든지 벌 수 있겠지만, 그건 세프가 추구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식 하면 직화구이, 비빔밥, 된장찌개, 떡볶이, 김치, 불고기밖에 없다는 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

    "제가 정성껏 준비한 레시피를 맛보고 중국 음식평론가나 외국인들이 한식을 새롭게 보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

    이런 한식 세계화 어떠세요?

#맛객 #한식세계화 #MARU #안현민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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