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안 되는 이유, 그것을 할 수 없는 이유
엄지 손가락이 아파서 좋아하는 뜨개질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손가락이 욱신거려온다. 손가락 끝이 갈라진 채 굳은살이 생겼다. 갈라진 틈 사이로는 빠알간 속살이 살짝씩 보일 정도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분다. 무엇보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센터의 수돗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한 한겨울이 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외진 산골도 아니고, 물이 귀하다는 섬 동네도 아니고, 번잡한 도심이다. 하지만 도심이라기보다는 구(久) 시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건물 자체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세 살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시는 곳이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 너무하다 싶었다. 아이들이 클레이 놀이나 미술 놀이, 모래놀이를 하는 날이면 저 차가운 물에 대고 어떻게 손을 씻으라고 하나 걱정을 했었다. 한 번도 갈라진 적 없었던 내 손가락 끝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도, 여기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겨울만 되면 동장군이 내 손가락을 갈라놓고 갔다.
양치질을 할 때마다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섞어 입을 헹구다가 다른 치료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에효,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어요. 어른들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은 어떻게 손을 씻죠?"
그러자 센터 초창기 멤버인 그 선생님은,
"그러게요." 라며 살며시 웃어 보이며 나가셨다.
이상한 건 대기실에 있는 아이와 부모들 모두 어느 하나 불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인 건지, 원래 그렇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것인지 몰랐다.
이상한 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만이 아니었다.
센터가 있는 7층 건물에 차를 댈 수 있는 주차공간은 단 두대이다. 그것도 좁디좁은 오르막 골목길에서 우회전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자칫하면 골목 길안에 하루 종일 갇혀있게 되어버릴 수도 있는 비좁은 곳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그곳에 차를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건물 앞의 공영주차장에 기꺼이 주차요금을 내고 들어오신다.
카페 하나 갈 때에도 주차요금을 내주는 요즘 시대에, 혹시 시간이 초과되어 몇 백 원이라도 주차요금을 물어야 되는 날이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는 시대에. 건물 안에는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없고, 게다가 시간마다 요금이 매겨지는 유료주차장(그래도 비교적 요금이 저렴한 공영주차장이다)에 주차를 해야 한다.
그래도 그 요금에 대해서 아무도 불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전에 근무하던 신도시의 센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상담이 길어져서 주차요금을 물었는데, 왜 추가로 주차권을 주지 않는 것이냐며 짜증을 부리던 부모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근무를 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부촌이라 알려진 바로 옆동네의 신도시와는 달리, 이곳에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월세를 낼 수 없어, 아직도 저녁식사 때가 되도록 밥을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이 친구네에서 밥을 얻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저녁을 먹여주는 태권도 학원도 있다.
요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마을버스가 오르막길의 좁은 골목길을 올라갈 수 없어 결석을 하게 되는 아이들이 많다.
뉴스에서만 보던 가슴을 철렁 이게 만드는 학대와 방임을 목격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만들어주기 어려울 만큼 일반적인 지식조차 배울 수 없었던 환경의 부모님들도 계시고, '아이는 엄마가 알아서 보는 거지.' 라며 매일같이 아내를 구박하고 핀잔을 주는 남편들도 있다(구박과 핀잔만 주면 다행이다).
나도 잘 살고 싶다, 잘 해내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바른 소리만 하며 살고 싶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내 아이가 안전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따뜻한 옷을 입고 적절한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한겨울에 차가운 물만 나오는 수도도, 매번 올 때마다 내야 하는 주차요금도 여기선 불평 거리에 올리기조차 어려운 정말 손톱 끝의 때만 한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굶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맞는 것도 아니고, 내 존재를 꺼지게 만드는 비난도 아니고.
바꾸기 어려운 이 삶 속에서의 고달픔과 하소연들을 털어놓고, 상식이 통하고 한마디의 위로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이 곳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곳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심장과 같았다.
지금도 철부지이지만 더 철이 없었던 어리고 어렸었던 시절에는, '가난과 무지'는 불성실함의 결과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못해. 더 부지런해야지. 왜 이것을 몰라...
하지만 그건 엄청난 오산이었고 너무나도 잔인하고 무서운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었다한들 여기에서 내 삶은 지극히 평범한 삶,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은 내 손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없었고, 아무리 오르고 오르려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이유들로 꺾이고 넘어지게 만드는 잔인한 세상의 눈과 손들.
이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해서 일을 해보지만, 다른 이들보다 배우는 것도 일하는 것도 더 힘들다. 세상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회가 없는 그곳에서, 또 선택할 수 없는 황무지가 만들어진다.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없었던 그 길, 그리고 그 길 한편에 연결되어 있는 나의 길, 그 길을 함께 가기 위해 우리가, 함께 사는 이 동네가, 이 나라가 고민하고 세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
갈라진 아픈 손가락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물이 아니라, 따뜻한 물 그리고 촉촉한 로션이 필요하다.
알아서 낫겠지 하고 계속 찬물을 들이부어대면, 겨우 덮어진 상처가 다시 갈라지고 더 깊게 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