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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Jul 18. 2023

힘을 빼는 게 제일 힘이 들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뭔가를 시작하거나 배워보려 할 때,

그때마다 듣는 공통된 조언이자 충고가 있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래 못해요.'
'힘을 빼면 훨씬 쉽고 아름다워요.'
'선생님, 힘 좀 빼도 돼요.'


 그놈의 힘, 힘, 힘.

나는 힘을 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항상 힘 얘기를 했다.

대체 어떤 '힘'을 빼라는 것일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래 못해요.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첫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적에, 태교로 처음 배웠던 뜨개질이 참 재미있었다. 보드라운 감촉의 실 느낌이 편안하였다. 수백 개, 수천 개의 코를 쌓아가는 시간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일상의 다른 복잡한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서로 엮여 나가는 실의 모양과 감촉을 보고 느끼는 시간은 마음에 평안함과 위로를 주기도 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매듭으로 코를 만들고, 그 코들이 쌓여서 하나의 코와는 다른 새롭고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졌다. 소소하지만 나의 마음과 시간, 노력이 들어간 나만의 작품이 만들어졌었다.


 다시 뜨개질을 배우기 위해 뜨개 수업을 수강했었다. 얼른 다음 기법으로 떠보고 싶고, 하루빨리 예쁘게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싶었다. '잘하시네요.'라는 칭찬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둥둥 떠오를 때면, 코바늘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실을 감고 있던 왼쪽 두 번째 손가락에 실이 지나간 자리가 바퀴자국처럼 남기 시작하고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래 못해요.

그리고 나중에 김을 쏘이면 작품이 납작해진답니다."


 손가락이 아파서도 더 이상 뜨개질을 못하겠다. 더 많은 코바늘 기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빨리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힘을 빼는 연습을 먼저 해야 했다. 말처럼 쉽진 않았지만 일부러 기울이는 노력으로라도 힘을 빼려 하니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손가락도 아프지 않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만큼 계속 뜨개질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작품은 뜨거운 김을 쐬니 더욱 푹신푹신 예뻐졌다.





힘을 빼면 훨씬 쉽고 아름다워요.


 아이의 미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친절하시게도 선생님께서 아름다운 첼로 연주곡을 틀어주셨다. 문득 대학 때 취미로 배워보았던 바이올린 소리가 생각났다. 그땐 언제 노래 한곡을 연주해 보나 하는 마음에, 한 가지 음만 수십 번 연습하는 시간이 힘들었고, 손등도 팔도 아팠었다. 생각만큼 예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였나, 무대 위 마돈나와도 같은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보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 편안한 음색의 첼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가 연주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첼로로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미술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첼로 수업을 듣기로 했다.


 첼로는 바이올린과 활을 잡는 법도, 악기를 잡는 자세도, 시작하는 음계도 달랐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처음 켜보는 첼로의 소리는, 그렇게 귀가 아프지도 않고 듣기 불편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 같은' 그럴듯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음을 만들어주는 왼손도 아래위로 움직이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조금만 연습을 해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격려해 주시거나, 새로운 곡을 배울 때면, 마음을 담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아름다운 곡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잘하고 싶다, 틀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서서 또다시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갔다.


"힘이 들어가면 소리가 이렇게 거칠어져요.

힘을 빼면 훨씬 쉽고 소리도 아름다워요."


 긴장되고 경직된 내 몸과 마음이 민망해져 온다. '잘하려고 하지 말자. 방에서 나 홀로 연습하는 거야.'라고 되뇌어본다. 잘했다 못했다고 할 것 없이 놀이하듯 활 대신 장난감 자동차를 밀어본다고 생각도 해본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잘하려 애쓰지 말고, 힘을 빼어보니 소리가 더 아름답다. 넘어가지 못할 것 같던 고비의 마디도 물 흘러가듯 쉽게 넘어간다. 참 아이러니하다. 잘하려고 애쓰면 잘하지 못한다. 힘을 빼야 잘한다.





선생님, 힘 좀 빼도 돼요.


 내가 제일 잘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양육'이다.

첫째와 둘째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고, 그 과정 중에 넘어져도 스스로를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공부를 잘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한 목표는 부모인 내 마음대로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두 아이의 얼굴을 그리며, 부모인 내가 어떠한 신념을 지니고 어떠한 도움을 주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시간이 헛되지 않게 나와 남편 그리고 두 아이의 손발이 척척 맞아나갈 때는 참 흐뭇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어긋나는 걸음에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 걸러내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완벽한 엄마'의 기준에, 나 또한 엄마이기 때문에 흔들리고 마음이 조급해져 아이들을 키우며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의 속도대로 예쁘게 걷고 있는 아이에게 뛰어보라 하기도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아이의 실수에 엄마인 내가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잔소리가 길어진다. 그날 따라 아이도 예민해져 나의 말에 맞받아칠 때면 '내가 잘못 키웠나.' 하는 생각에 엄마의 효능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를 찾아오는 아이와 엄마들에게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선생님이었다는 게 부끄러워진다.


 그럴 때면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힘 좀 빼도 돼요. 힘준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힘을 줄 때,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했지만 넘어지기도 했었다. 굳이 내가 힘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걸음을 보탠다고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내 힘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을 뺀 척, 괜찮은 척, 아닌 척이 아니라 정말 내가 '괜찮아'야 했다. 아이들이 넘어져도, 잘못 길을 들어서도, 헛걸음을 하더라도, 돌아가더라도 말이다.






 힘을 빼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힘을 줘서 잘 되는 건, 이 세상에 팔씨름뿐인 것 같다.

아, 팔씨름도 빼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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