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책방지기의 서평 #3
서점에서 운영하는 10월 북클럽 책을 선정하려 교보문고에 갔다.
클레어 키건의 신작 <푸른 들판을 걷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었다. X 세대 영문학도였던 나는 대학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이었는데 그의 소설도 좋아했지만 에세이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통해 일상에서 본인이 느끼는 소소한 감상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음악들에 대해 밝혔고, 나는 하루키의 취향을 reference 삼아 하루키가 좋아했던 작가와 음악을 탐험하곤 했었다.
어떤 것은 좋았고, 어떤 것은 나에게는 그닥이었다. 하루키는 미국 현대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미니멀리즘 문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나도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헤밍웨이를 필두로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의 작가나 화가, 당시의 문화를 좋아했던지라 클레어 키건이 레이먼드 카버의 전통을 잇는 어떤 미니멀리즘적인 단편 소설의 혜성과 같은 존재라는 평에 끌려 우선 <맡겨진 소녀: Forster>를 읽게 되었다.
<맡겨진 소녀>는 절제되고, 압축적인 스토리와 문체가 돋보이는 미니멀리즘 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과도하게 디테일이 생략되지 않았나,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오픈 엔딩은 좋지만 조금만 더 디테일을 넣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맡겨진 소녀>가 좀 더 보고 싶어졌다. 원작에서 부족했다 싶은 디테일들이 영화 속에서 잘 재현되었기를 바라며, 아직 OTT에서 서비스하지는 않는 모양인데 조만간에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보고 너무나 놀랐던 사실은 책의 배경이 1981년인데,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사는 주인공 소녀는
우물을 길러 물을 조달하고 집에서 빵을 비롯해서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심지어 멀리 떨어진 읍내에서
원단을 사가지고 와서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18세기나 19세기 영화를 보는 듯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198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우물은 민속촌에 가서야 구경할 수 있었고 집에서 빵을 해 먹는다던지 원단을 사가지고 와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였다. 우리가 서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국가 간의 격차보다 내가 살아왔던 세월이 도시와 농촌 간에 격차가 더 컸었을 수 있고, 도시화의 광풍 속에서 여러 국가에서 농촌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빨리 변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어떤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와 갈등이 있었겠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영화화 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11월에 개봉된다고 하는데, 그전에 원작을 먼저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