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한심한 내 모습을 본다.
'애들은 놀아야지'를 설파하며 사교육에 선을 그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정보에 휩쓸려 갈팡질팡.
초등 입학을 앞두고 혼자 안절부절이다.
문제는 한글. 띄엄띄엄 책도 읽고, 간판도 읽고.. 정상 속도로 자라는 아이에게 자꾸 속도를 재촉한다.
어제저녁 아빠와 보드게임으로 몇 시간을 집중하는 아이의 '집중력'은 간과하고... 책상 앞에서의 분주함만을 꾸짖는다.
발단은 학습지 선생님. 한글 떼기, 읽기 독립 노하우에 대해 조언을 구하던 중...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모범생의 태도'를 강조하신다. 같은 또래의 한 아이는 5과목의 학습지를 한꺼번에 하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라고.(헉 5과목?)
그 자세가 조금씩 실력으로 나오더란다. 여자아이들이 가진 긍정적인 얌전, 모범성 짙은 모습을 강조하면서.
결국 이런 아이가 학교에서도 사랑받는다나 뭐라나.(현실은 인정!)
아이의 기질, 성향은 무시한 채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엉덩의 힘'에 대해 침 튀기며 강조하시는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보통의 선생님이 가진 보편적인 사고방식일 테니.
이를 어쩌나. 얌전과는 거리가 먼 우리 딸내미.
유치원 담임 선생님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아이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는
'리더십' '사회성' '창의성' '정직함' '배려심' 등을 꼽았더랬다. 사실 이런 게 더 중요한 자질 아니냐고...
자랑하듯 대변하듯 대응하자.. 선생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리더십, 창의성요? 그거도 좋지만 일단 모범적인 학습 태도... 이게 제일 중요해요."
얌전하고, 집중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가 '모범생'으로 평가받고.. 그게 결국 아이의 실력이 된단다.
개인적 기질, 성향을 무시한 획일적 교육방식.... 의 단면
이토록 무시무시한 말이라니..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듯한 이 예감.
이를 어찌하나.
선생님과의 한밤중 설전을 끝내고 난 뒤.. 보드게임을 마치고 온 아이에게 한참을 퍼부었다.
"이 책 읽어봐! 아직도 그 글자를 몰라? 이 책 다 읽을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마! 엄마가 움직이지 말랬지?"
헉 이건 뭐지? 나도 내 모습에 순간 당황. 당황한 아이는 왜 갑자기 혼내냐고...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렇게 아이는 꼼짝 앉고 한글책을 띄엄띄엄 읽었고... 잠을 허락했다.
잠든 아이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죄책감, 미안함에 잠이 오질 않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아침..... 아이를 깨웠다. 등원 준비를 마친 아이가 아침을 먹으며 책을 들고 온다.
"엄마, 이 책 읽어줘~!"
미안한 맘에 품에 꼭 끌어안고 4권의 영어책을 읽어줬다.
4권의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흐트러짐 없던 아이의 모습.
지난밤 난 뭔 짓을 한 건가.. 수 없이 반성하는 오늘.
학습지를 당장 끊어야지 결심만 수백 번.
사실, 지나 보면 다 부질없는 짓.
그럼에도 난 왜 흔들리나ㅜㅜ를 생각한다.
내 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
꼭꼭 숨기려고 했건만.
여지없이 드러난다.
또 한 가지.... '선험자들의 섣부른 정의'다.
"내가 경험해보니 말이야... 이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반말 섞어 쏟아낸 섣부른 판단이 초래할 파장을 엿봤다.
난 지난 경험을 핑계 삼아.. 얼마나 많은 선입견, 편견을 입으로 떠들고 다녔던가.
조언, 충고랍시고.. 내뱉었던 지난 말들을 곱씹으며 주어 담는다.
사려 깊지 못했음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