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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Nov 04. 2019

너의 반항을 응원할께

워킹맘 에세이

"나는 어른들한테 호감을 주는 고등학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라카미 하루키 - 


적당한 민폐,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의 나쁜 짓. 중간 정도의 성적.

하루키의 고등학교 시절 성적은 대체로 이렇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글쓰기의 대명사인 하루키의 학창 시절 말이다.

수업 시간엔 소설을 읽고, 수업도 빼먹는 건 일쑤고, 여자 친구와 늦은 시간까지 놀거나, 영화관 구석에서 영화 관람, 재즈 카페에서 재즈를 들으며 담배를 피워댄 그다. 그야말로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던 건강한(지극히 사적인 평가) 청춘. 

"요새 젊은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쯧쯧..."이라는 어른들의 핀잔을 듣고 살던 소년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아직도 그는 어른들의 핀잔을 들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정상이라고 지금도 믿는단다.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참고)


하루키의 학창 시절 반항이 반가운 건 고작 7살 딸의 반항을 온몸으로 감내(?)하던 나에겐 그 어떤 육아 지침서 보다 반갑다. 

7살과 고등학생의 비교는 무리이긴 하나. 반항을 반기는 이유는 일맥상통한다.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을 일찍부터 훈련했다는 점이다. 내 생각, 내 취향을 정확히 표현한다는 건 의미 있는 행위다. 그렇게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가끔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체력 고갈의 때, 또래 친구가 어른들이 지켜보는 공공장소 등에서는 고도의 인내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사회적 매너를 넘나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는 아이의 반항을 허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착한 아이, 잘 큰 아이는 이러이러하다'는 암묵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누군가의 시선을 늘 의식하고 사는 사회인으로서 허용과 제재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늘 이어진다. 

이렇듯 평범한 엄마일 수밖에 없는 내가 '하루키의 성장 스토리'에서 반항기 딸을 이해해보려 애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런지도. 


요 며칠 무거운 몸이 힘겨워 귀여운 또는 깊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탈(?) 행위를 일삼는 딸아이를 매몰차게 혼냈다.

어젯밤, 살금살금 다가온 딸아이는 귓속말을 속삭인다.


"엄마, 제발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낼 때는 조심해줘. 내가 너무 창피해."


그날 오후 마트에서 실컷 혼난 딸은 하루가 마무리되기 전 끝내 엄마에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제법 타당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 딸! 어떤 상황에도 지금처럼 너다운 모습을 잃지 않길 바라~^^"


#엄마의 에세이#딸의 귀여운 반항#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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