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고 싶은 날엔
# 걷는 내내 차가운 바람에 맞섰더니 따뜻한 어묵이 생각났다. 마침 단골 어묵집이 근처다.
반갑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즐겨 먹는 '매운 어묵'과 '날치알 김밥'을 주문한 후 자리를 찾았다. 가게 안에는 할머니 세 분이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어묵 국물을 드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계셨다.
그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깝고 좁은 거리와 공간 탓에 할머니들이 나누는 얘기들이 또렷하게 들린다.
싫지 않은 구수한 대화를 양념 삼아 어묵을 삼키는 순간. 덜컥 '어떤 말'이 목에 걸렸다.
"우리 아들이 변호사인데...~~". "우리 조카가 약사거든~.....". "남편이 영어교사였잖아~"
중간에 앉아 얘기를 주도하시는 할머니는 가족들의 사소한 에피소드들. 사이로 들리는 말.
꼭 빠지지 않는 말의 주어는 '가족의 어떤 직업'이었다. 덕분에 남편, 아들, 조카, 손주의 직업을 모두 알아버렸다.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흔한 광경, 흔한 대화, 흔한 말이지만 오늘은 목에 걸린 채로 잠시 둔 후 천천히 삼키기로 한다.
"나도 그럴까?" 되물으며...
누구나 그렇듯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직업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하나?
자랑할 만한 직업이 뭐지? 공부는 잘해야겠지? 학원은 어디로?
뭐 이런 사소한 질문들을 포함한...그런 되물음 말이다.
# 평생 건설 현장에서 50년을 넘게 노동하며 살아온 아빠, 평생 주부로 40년을 넘게 남편과 자식을 위해 쌀을 씻은 엄마를 둔 자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현장은 하루일 때도 일주일일 때도 몇 달일 때도 있었기에 50년을 넘게 일했지만 아빠는 회사 주소도, 내선 전화도, 명함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직장으로 출근했다면 나는 그 회사로 가 숙제도 하고, 아빠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도 하고, 아빠의 네모반듯한 명함도 만져볼 수 있었을까.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했던 건 아빠가 회사원이, 건설사 대표가, 사장님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긴 경력을 유일한 직업을 그 노동을 감추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참회와 반성이 참 많이도 늦었다. 행여 누군가 아빠의 직업을 물어올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던 낯없던 시간들. 창피한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임희정 -
'가난하고 부족한 줄 알았던 삶이, 차고 넘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온전해질 수 있었다'는 고백에
'다행이다'... 혼잣말로 안도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엄마로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자꾸 세상의 소리들에 솔깃해지는 요즘.
"나도 이렇게 키우면 되겠구나"라고 앞선 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오늘 한번 더 안아줘야지. 사랑한다고 말해야지...이런저런 흡족한 대답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자식#부모#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