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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오래된 가죽 부츠의 쓸모
뭐라도 쓰고 싶은 날엔
by
roman editor
Nov 15. 2019
문득 ‘쓸모없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가지고 있는 힘들을 무언가에게, 누군가에게 다 주어버렸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신던 오래된 가죽 부츠를 꺼냈다. 얼마 전까지 '쓸모없음'으로 인해 신발장 구석진 곳에 방치된 신발.
새로 산 부츠는 당분간 신발장에서 꺼내지 못할 것 같다. 부츠의 쓸모가 이젠 아니 잠시 사라졌다. 높은
굽의 한 발짝이 힘든 지금의 나에겐 편치 않은 쓸모가 됐
다. 볼만한 모양새가 '쓸모'를 가로막는다.
대신에 신발장 구석진 곳에 처박아둔 오래된 부츠의 쓸모가 다시 살아났다.
지난날 익숙했던 하지만 잠시 낯설어진 낡고 헤진 구두를 바라본다. 차마 버리기엔 아까웠던 신발.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문득 ‘쓸모없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가지고 있는 힘들을 무언가에게, 누군가에게 다 주어버렸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낡음을 모른채 했던 지난 시간을 미안해했다.
그리고,
좁은 신발장 안에서 캄캄하고 웅크렸던 시간을
고마워했다.
낮은 굽과 넉넉한 공간으로 볼품없는 모양새가 지금의 나에겐 최고의 쓸모다.
낡은 구두만큼 헤진, 웅크린 나의 마음을 헤아린다.
마음 구석진 곳에 오래 방치된 마음들을 찾아본다.
삶의 분주하고 그럴듯한 쓸모들 때문에 처박아둔 진짜 내 마음을.
불쑥불쑥 드러나는 볼품없는 마음들을 감추는 데에 익숙해 버린 지금은 ‘진짜 내 마음’이 어떤 건지조차 구분하기 힘들다. 낡고 헤진 마음, 얼룩지고 상처 난 마음 위에 뽀얗게 뒤덮인 먼지들을 털어본다.
광을 내며 애쓰던 마음을 툭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래,
그 모습 그대로 진열해놓기로 한다.
어떤 시선에도 꿋꿋하게 드러내기로 한다.
숨기기에만 안달했던 볼품없는 내 마음, 나다운 진짜 내 모습을.
부츠의 구겨진 주름을 펴고, 구둣솔로 광을 냈다. 퉁퉁 부어있는 두 발을 집어넣자. 제법 모양새가
되살아났다. 아. 이렇게 편하고 따뜻할 수가.
이젠, 춥고 험난한 어느 날의 외출이 두렵지 않다.
#에세이#낡은 구두#나다움#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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