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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Dec 09. 2020

매일 밤, 그림책에 숨어 울었다

종일 육아와 살림에 곤죽이 된 난 매일 밤, 그림책에 숨어 울곤 한다. 아이에게 읽어 주던 그림책은 사실 내 눈물을 이해해 주는 따뜻한 손길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림책 읽기가 시작된 건 아이가 세 살 무렵부터다. 유난히 잠이 없는 아이를 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매일 밤 전쟁을 치러야 했던 어느 날 우연히 그림책을 읽던 중 아이가 스르르 잠든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난 매일 밤 그림책을 손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책 읽기.


어느새 그림책은 힘들 때, 외로울 때, 미안할 때, 슬플 때 아이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 숨죽여 울고, 웃고, 푸념을 늘어놓는 나만의 비밀친구가 되었다.


8살이 된 지금도 어김없이 밤마다 그림책을 펼친다. 요즘 펼치는 마음 안에는 ‘미안함’이 대부분이다.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매일 밤 아이에게 낮에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고백을, '미안하다'는 사과를 나직히 속삭인다.

때론 너무 힘들어 저절로 흘러내린 눈물에 당황해 ‘너무 슬퍼서 그래’라며 그림책 사이에서 살짝 눈물을 닦기도 한다.

초등 입학, 아직 어린 동생, 코로나까지. 지칠 대로 지쳐 뾰족해진 난 자주 ‘버럭’ ‘화끈’ 거리며 아이를 몰아붙였다. 엄마의 행동에 움찔 움츠러들다가도 이내 헤헤 거리며 천진한 웃음을 보이는 아이. 매번 미안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펼치며 운다.    



# “오늘은 엄마가 빨리빨리 ~ 너무 재촉해서 미안해(눈물 찔끔)”의 마음으로 ‘시간이 흐르면(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그림책 공작소)’을 읽었다. 느긋하게 바라봐 줄 수도 있으련만 매번 아이의 속도에 자주 발끈한다. 아이는 충분히 자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인데도 말이다.

아침마다 신발장 앞에서 꾸물거리는 아이에게 매번 잔소리다. “늦었어! 지각이야!” “그러니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지!” “도대체 아침마다 이게 뭐니?” “내일부터 일찍 안 일어나면 지각해도 엄만 상관 안 해!”

안절부절 마음이 조급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림책에 마음을 포갠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시간이 흐르면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지,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해.(미안해 기다려주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해, 너무 서툰 엄마라 정말 미안해)”

그래 시간이 흐르면 점점 아침 등교하는 일이 능숙해질 텐데. 미안한 맘에 숨어 턱 막혔다.

그런 나에게 그림책은 조용히 건넨다.

“괜찮아요.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거예요!”

   

# 그림책을 읽다가 울컥한 순간은 2개의 가지로 나뉜다. 지금 이 상황이 울컥하거나, 숨어있던 내 안의 묵은 감정이 올라와 울컥하거나.

사실 많이 힘든 요즘은 대부분 지금의 컴컴한 상황이 감정을 자극하지만, 묵은 감정이 올라온 날엔 눈물도, 떨림도 자재가 되지 않아 그림책 읽기는 중단되곤 한다.

'빨간 나무(숀탠, 풀빛)'가 그랬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우울이라는 감정이 한 순간 눈물을 타고 와락 쏟아졌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

“제발 나를 봐, 이렇게 네 옆에 있잖아.”    


“엄마 울어?” 눈치챈 아이는 “엄마는 이게 슬프구나.”라고 아이답게 내 눈물을 받아 준다.

꼭 아이의 말이 내 귓가엔 이렇게 맴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알아,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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