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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Feb 26. 2022

지하철, 어깨를 내준 다정한 이들

이토록 다정한 순간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탔다.

내가 탄 열차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순간 덜컹. 덜커덩.

열차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뿜어내는 빛이 강물의 잔잔한 물결에 기대어 있었다.

빛이 물결 위에서 잔잔하게 일렁인다.

편안하고 다정하게.     


얼마쯤 지나서 내 옆에 앉은 교복 차림의 어린 여자 아이의 머리가 스르르 내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빛이 내려앉은 잔잔한 강처럼 나도 넓지 않은 어깨를 기꺼이 내어준다.

열차의 반대편 창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나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무심코 흘려보냈던 아주머니의 다정한 말과 함께.     


고된 업무로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밤늦은 시간에 퇴근했던 난 항상 지하철에서 잠을 자곤 했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면 내 머리는 사람들 쪽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옆 사람의 움찔, 하는 움직임에 후다닥 깨서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하곤 다시 잠에 빠지곤 했다.     

그날도 변함없이 꾸벅꾸벅 졸다 내 머리가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의 어깨를 툭 쳤다.

순간 놀라 깬 나에게 아주머니는

괜찮아요. 아가씨, 기대고 자요. 아휴 많이 피곤했나 보네.”라고 어깨를 내어줬다.

“고맙습니다”라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감사 인사였다.  

온화한 아주머니의 다정한 말을 난 그렇게 흘려보냈다.   

   

고된 시간을 건너온 어느 날의 나.

난 작고 어린 소녀에게 내 어깨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이 때론 얼어붙은 마음을 다정하게 토닥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이라고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 준 다정한 사람들 덕분이다.    

 

잃어버렸던 수많은 다정한 순간을 떠올린다.

작고 사소하지만 나를 미소 짓게 했던.

잔뜩 어깨를 웅크린 채 핸드폰 만을 들여다보는 무표정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어떤 모습이든 살아가면서 좀 더 다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빛, 손짓, 끄덕임, 짧은 인사.

이렇게 다정한 마음들이 있었기에 외롭더라도 지금의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만드니까.  

   

다정함이란

어두운 산책길의 가로등 같은 것

있으면 덜 외롭지

어두울 때는 최고로 다정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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