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백 마흔여섯 스푼
현대 2025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삶을 개선시킬 하나의 방법을 묻는다면
휴대폰 이용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 같은 경우 심심해서 스마트폰을 켤 때가 많았다. 자주 그렇게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약간의 정적, 고요한 시간이 찾아올라 치면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을 눌렀다. 기사를 읽고 재밌는 짤방, 유머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관심 있는 기사를 다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적당히 한 두 줄 읽다가 바로 내려서 댓글을 보았다. 신문기사의 내용이 관심이 있다기보다 신문기사를 보고 일으키는 다른 사람의 반응들에 관심이 있었다.
신문기사들은 사람들을 긁어모으는 바람잡이고, 그 속에서 목소리 큰 한 두 사람이 자기 의견을 떠든다. 흥밋거리를 찾는 나는 그 사람들의 반응을 구경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휴대폰을 자동적으로 활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좀 더 불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우리는 스마트폰을 보고 나서도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을까?
지루함은 정신이 쓰이지 않아 느끼는 고통인 동시에 욕망의 난제에 빠지는 괴로움이다.(욕망의 난제 : 뭔가를 하고 싶으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지루해진 사람은 정신이 허전하다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감정을 느끼든, 무슨 상상을 하든, 지금 이 사람은 자신의 인지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와 동시에 그 사람은 뭔가를 하고 싶지만 그 일을 시작 조차 할 수 없는 상태기도 하다.
이것이 극심한 압박감을 일으킨다. 즉,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그 욕구가 지금 이 순간에 바로 할 수 있는 것과 연결되지 못한다. 이때 지루함은 막연하고 목적이 없는 결핍 상태다.
<지루함의 심리학, 제임스 댄커트, 존 D이스트우드 지음, 최이현 옮김, Beding 출판사 46-47p>
'지루함'은 당신의 인지적 자원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때 불편함 감정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루함'이라는 것을 통해 무엇가를 몰두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개발되기 전까지 이 방법은 꽤나 훌륭하게 작동했던 것처럼 보인다. 지루함이라는 것이 행동을 하도록 하도록 추구하게 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생존에 다양한 활동을 했을 것이다. 타인과 이야기해 사회적 관계를 쌓았을 수 있고 수렵, 채집으로 먹을 것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우리는 인지적 자원을 작은 화면 안에 계속 빼앗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지적 자원은 낭비된다. 행동은 습관화되어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스마트폰을 켠다. 우리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신호를 계속 값싸게 버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세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세상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최선을 다한다. 즉, 인지능력을 발휘하고 생각을 표현하며 주변을 통제할 수 있어야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지루함은 세상과 단절된 상태이므로 지루함을 느낀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통해 막을 수 있는 문제들에 취약해진다.
<지루함의 심리학, 제임스 댄커트, 존 D이스트우드 지음, 최이현 옮김, Beding 출판사 138p>
이 말은 대부분이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태어났으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 세상과 내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무엇이든, 당신의 생각하는 바를 공감받길 원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단적으로 내가 브런치 글에 매일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생각을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싶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계속 보게 되면 세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지루해지는 순간 통제력을 상실한 기분이 들고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불평밖에 안 남는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 무엇이 담기기를 기다리는 그릇이 되거나 자극 혹은 누군가가 기분을 달래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회복해야 할 때다. 우리는 행위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내부와 주변에 미칠 힘을 기르기 위해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
<지루함의 심리학, 제임스 댄커트, 존 D이스트우드 지음, 최이현 옮김, Beding 출판사 95p>
마지막 말에 핵심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내부와 주변에 미칠 힘을 기르기 위해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
결국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변화를 바란다는 신호다. 지루함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에너지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한 선택지는 스마트 폰 위에서 엄지손가락이 탭댄스를 추며 빠르게 쇼츠 릴스를 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주도적으로 무언가에 몰입해서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건강하고 싶다면 폰을 끄고 집 밖으로 나가서 운동을 해야 하고
지식을 얻고 싶다면 책을 봐야 하고
이성을 만나고 싶다면 바깥의 지나가던 이성에게 말을 걸거나 지인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위한 다면 투자 잘하는 사람을 만나서 공부한 후 주식 한주라도 직접 사봐야 하고, 부동산 임장을 가서 등기를 쳐봐야 한다.
마음이 복잡하면 눈을 감고 명상을 해야 스트레스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폰만 봐서는 절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요지는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의 삶에 주도권을 찾고 행동을 하기 위한 신호라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을 할 때 세상과 당신이 상호작용하기 시작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다.
사는 데에는 의미가 없다.
불교에서는 풀 한 포기가 태어나고 죽는 것이나 우리가 죽는 것이나 별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에 따라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당신은 '지루함'이라는 신호를 통해 어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요약
1. '지루함'은 당신의 인지적인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무언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라는 신호다.
2.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그 인지적 자원을 값싼 곳에 자꾸 버리도록하는 행위다.
3. 신호를 사회와 관계를 맺는 의미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