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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 Jan 16. 2024

한의대에 가기 위해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고집이 셌다는 걸.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이면 부모님께서 항상 이야기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고집이 셌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야 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백일이 지났을 무렵이다. 

이때 내가 설사병이 걸렸었다고 한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계속 물 설사를 해서 기저귀를 채울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설사를 하면서 열이 치솟아 소아 병원에 바로 입원하였다. 이유를 돌이켜 보자면 어머니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으니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서 우유를 2L씩 마셨다고 한다. 진료를 본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가 우유를 많이 먹은 후 모유 수유 한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을 거라 판단하여 모유는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분유로만 먹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00일 무렵의 고집이 셌던 나는 절대로 분유를 먹지 않았다. 어머니 모유를 먹다가 슬쩍 분유로 바꿀라치면 어떻게 알았는지 분유 꼭지를 뱉어냈다. 의사의 '절대금지'가 있었으므로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와 나를 감시했다. 그런데 100일의 고집 센 그 아이는 심지어 몇 끼, 며칠을 굶더라도 절대로 분유를 입에 대지 않았더란다. 어머니는 내가 굶어 죽을까 하는 걱정에 간호사, 의사의 눈을 피해서 숨어서 아주 몰래 조금씩 먹였다고 한다. 어머니도 이때 울면서 젖을 먹였다고 하는데, 젖을 먹이지 않으면 진짜로 굶어 죽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모유를 먹이는 것으로 인해 내가 잘못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먹이면서도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나로 인해 어머니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고 항상 이야기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셌던 아이는 20살이 되어서도 자기 나름의 이상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무휴학 반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기들에게 알리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개 반수를 하는 많은 경우는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휴학 후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공부에 집중을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동기들에게 자기가 수능 준비하는 것을 알려서 학과 행사를 최소한으로 하고 과제 준비에서 양해를 구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때 무휴학 독학 재수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남들이 내가 공부하는 것을 몰랐으면 했다. 돌이켜 보자면 한의대에 입학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휴학을 하면, 현재의 동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밑의 후배들과 함께 다녀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지금의 동기들과 관계도 좋았으므로 이 관계를 끝내기가 싫었다.  그래서 절대로 분유를 먹지 않는 아이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집을 피웠다. 동기들에게 알리지 않고 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끼어있는 삶은 힘들고 괴로웠다. 


  대학교 수업에 가서는 열심히 학과 공부를 했다. 이때 이중적인 마음이 시시각각 들었다. 학과 공부도 썩 잘 맞았기에 재미있게 공부했고, 동기들과 과제도 잘해나갔다. 교대는 특성상 '아싸 (outsider)'가 만들어질 수 없는데 모든 과목마다 조가 생기고 함께 해 나가야 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늘 다른 동기 여러 명과 조모임을 하며 모이고 모였다. 하지만 조 모임을 하면서 한쪽에는 오늘 수능 공부 시간을 얼마나 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은 계절과 상관없이 서늘했고, 적막했다. 매일 청소가 되어 있어서 정돈된 책상은 피부가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교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늘 이곳에 오길 원했지만,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수능 공부를 하다가도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재미있었던 일, 해야 할 과제 일들이 떠올랐다.  내 마음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소속되어 있지 못했다. 대학교를 마냥 즐겁게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수능 공부에 올인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 선택이 옳은 것인가 항상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휴학을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수능 공부를 포기해야 하나?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 했다. 방황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고집 센 아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누구에게는 무식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무작정 글을 썼다. 수 십 번, 수 백 번, 수 천 번을 썼다.  한의대에 제발 가게 해달라고 나 자신에게 빌고 빌었다. 



20살 그때의 나는 이상한 고집을 피우고 있었고, 처절했고, 간절했다. 



수 백 번씩 내 마음에 썼던 바람들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나는 진짜 한의대에 합격했다. 비록 경희대 한의대는 가지 못했고, 본가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한의대에 합격했다. 문자 메시지를 받는 순간, 총장님의 동영상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입학을 환영한다는 인사였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분유 꼭지를 제대로 물지 않던 것부터, 무휴학 독학재수를 하겠다는 것까지 늘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끼어있는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원하던 한의대를 입학하게 되면서 괴로움은 더 커졌다.  

 



집착은 편도체와 중격핵을 포함하는 뇌 감정 회로의 역학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영역들은 전통적인 문헌들이 고통의 근원이라 보는 것, 즉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불쾌한 것을 없애기 위해 집착하는 갈망이나 혐오의 근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상하는 뇌, 246p, 대니얼 골먼, 리처드 데이비슨 지음,  김완두, 김은미 옮김, 2022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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