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내가 한의대에 들어가서 첫 번째 느낀 것이었다.
나보다 잘 생기고 멋진 사람. 나보다 재미있는 사람,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 나 보다 돈이 많은 사람. 나 보다 몸이 좋은 사람.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두드러지고 있었고, 나는 보잘것없어 보였다.
20살의 나란 인간은 세상을 판단할 때 단 하나의 줄자만 가지고 있었다. '성적'이라는 줄자였다. '성적'이라는 줄자로 주변 친구들을 판단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하지만 그 줄자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쓸모가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이었다.
인간은 틀린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줄자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익숙했고 지금까지 잘 맞아왔기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고, 케케묵은 줄자를 다시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 기준에 나를 다시 맞추려고 했다.
내가 이때까지 가장 잘해왔던 것은 남들보다 공부를 더 하고, 더 오래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의 줄자 꼭대기에 위치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예과 2학년이 올라가는 시점에 이렇게 다짐했다.
'그래 과 top을 하자'
예과 2학년이 올라가자마자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공부하는 시간을 대폭 늘렸다. 무려 대학교에서 '예습 복습'을 했다. 노는 시간을 줄이고 친구들과 모임도 대폭 감소하고, 어쩌다가 한 번씩 있는 선배들과 술자리도 거부했다.
이 시절의 나는 참 독했는데 이때 동기 친구들은 나를 KBS 시기라고 부른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카페, PC방, 코인노래방 등 조금 놀려고 하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부해야 해서 먼저 가야 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친구들에게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고
잠깐 맥주 한 잔 하다가도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고
코인노래방에서 친구과 내가 노래를 부르다가도 시간이 되면 나는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공부만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친구랑 코인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노래 부르러 갔다. 가서 있다 보니 다시 시간이 아까워서, 친구가 노래 부르고 있는데 벌떡 일어나서 나간 적도 있었다. 그 친구한테 미안하다.)
친구들의 모임 보다 나는 내 줄자 위의 꼭대기에 있는 게 더 중요했다.
몇 번씩이나 뒤통수가 얼얼해진 친구들이 억울했던지 어느 날 등교를 했더니 나를 이렇게 불렀다.
"KBS 오셨는가"
"KBS가 뭐야?"
"K(김 XX) B(배신자) S(새끼) 하하하하하"
이 말을 들었을 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내가 스트레스받으니 잠깐 놀자고 해놓고, 다시 시간이 아까워 배신을 한 게 워낙 많아서였다. 이때 친구들한테는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나 뒤통수를 치고 또 쳤음에도 친구들은 나랑 함께 있어주었다.
그렇게 원 없이 예과 2학년 1학기에 시기 공부를 했다.
몇 주간의 시험 기간 때는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면서 공부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도서관 내 자리 한쪽 곁에는 레쓰비 탑이 쌓여 있었다.
그 결과 나는 7등으로 가까스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아주 쓰라렸다.
- 친구들이 나를 KBS라 부르게 되었고
- 몇 주간 잠을 못 자고 신경 쓰다 보니 체중이 5kg나 빠졌었다. 방학을 시작하고 일주일 동안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더 쓰라린 것은. 내가 일등을 할 요량으로 덤볐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해도 7등밖에 안된 것이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한 친구 때문이었다.
나랑 기숙사 옆방을 같이 쓰는 친구가 있었다. 같이 공부를 할 땐 내가 그 친구를 깨워서 같이 공부시켜줘야 했다. 기숙사에 가서도 그 친구가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2등을 했다. 황당한 마음에 내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맥락을 찾아서 주욱 읊어댔다.
세상에는 진짜로 공부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기억하는 인간 복사기가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성적이라는 줄자'에서도 한계와 벽을 느꼈다.
예과 2학년
내 몸과 친구관계를 다 바쳐서 만든 7등이라는 성적표와 30만 원이라는 장학금은 너무나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공부를 통해 성취를 했어도 나는 계속 괴로웠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다시 나만의 '줄자'를 찾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