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
반대편에서 달리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핸들을 잡은 제자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하던 차가 서로 맞부딪혔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차체가 순식간에 뒤로 밀렸고 운전석까지 파고든 범퍼에 두 다리가 끼어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제자를 원망하기엔, 육체적인 고통이 너무 컸다. 뼈가 산산조각 나는 분쇄골절이었다.
엄청난 통증과 함께 공포가 몰려왔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아버지였다. 본능적으로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다가 검고 뿌연 연기의 안쪽에서 피투성이가 된 피붙이들을 발견했다. 죽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주검을 곁에 둔 채, 나는 그렇게 하반신이 박살 난 몸으로 1시간 동안 방치돼 있었다. 첫 번째 우연이 불운이었고 두 번째 우연이 행운이었다면, 세 번째 우연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24p, 장현갑, 불광출판사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공중보건의를 근무하기 위해 훈련소 생활 하던 시절, 같은 생활관에 있던 동기가 추천해 준 책 한 권이었다. 그때는 제대로 읽지 않고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때는 읽기가 버거웠지만, 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이 많아지자 맨 처음 읽어야겠다고 든 책이었고, 책의 첫 부분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의 기분은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아내도 없었고, 딸도 없었지만, 저자의 고통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차에 다리가 끼인 채 방치되어 있는 1시간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모두 극대화되어 중첩된 상황이 아니었을까.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였을까 얼마간 책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종이를 넘기는 손에 땀이 맺혔고, 손이 떨렸다. 한 동안 가만히 있어서 그 상황에 나오지 못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있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지?"
누구에게도 가장 힘든 기억은 존재한다. 무의식 저 깊은 아래 심연에 존재할 뿐이고 그것을 웬만해서는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무 깊고 곪은 상처이기에 살짝 공기만 쐬어도 내 온몸이 부서지고 가슴이 시리듯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극복을 해서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
저자가 겪은 어마어마한 고통과 괴로움을 벗어난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고통과 슬픔에 몰입되어서 책장을 펼치지 못했던 내 손이, 설렘과 흥분으로 다시 종이를 넘겼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읽은 책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책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이다.
서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삶의 고뇌를 헤쳐나가는 확실하고도 지혜로운 방법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지난 76년간의 삶을 회고하면서 응어리진 수많은 고난들 그 고난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찾아 헤맨 방법들과 지혜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삶의 여정 속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일단 피하고 보자고 도망가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9p, 장현갑, 불광출판사
나 또한 그랬다. 이때까지 내 삶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한의대에 들어오지 못해도 고통이 가득했고,
한의대에 입학을 해도 고통이 가득했다.
장학금을 받아도, 라코스테를 입어도 모든 것들이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새 내 잇몸 뼈는 녹아내렸고
나를 낳아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에게도 응석과,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괴로움이 가득했으며,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늘 피하거나 도망가고 부정하려 했다.
이 책이 제시한 방안대로라면 내가 지금껏 겪어 왔던 괴로움과 고통을 사라질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나는 저자가 말한 방법대로 내 인생에 실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중심에 '명상'이 덜컥 들어왔다.
참조) 저자 설명
장현갑
이 책의 저자인 장현갑 교수님은 심리학 교수님이셨다. 심리학의 연구로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 5개 분야에 등재되었고, 국제인명센터 100대 교육자에 선정,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미국인명연구소 2009년 올해의 인물에도 올랐다.
이에 더 나아가 심리학에 동양 정신문화를 함께 도입하였다. 현재는 흔하게 쓰이고 있는 MBSR (Mindfullness based on stress reduction)을 만든 존카밧진과 교류하여, 존 카밧진의 저서를 번역하여 한국으로 들여왔다. 더 나아가 MBSR에 호흡명상과 자비 명상을 추가하여 K-MBSR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환자치료에 직접 활용하였다.
그리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명상학회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교수님은 심리학을 통해 뇌과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뇌과학에 동양 정신 문화인 '명상'을 함께 접목하였다. 명상의 정신적 수련법을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밝힐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였고, 명상이 과학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데 큰 공헌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