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욕구에도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브런치 글쓰기가 해를 거듭하는 동안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실명으로 소통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얼굴을 공개한 작가들도 많다. 그만큼 진심을 담아 글을 썼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읽다 보면 연민과 응원의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간혹 너무나 내밀한 이야기나 사건에 대한 적나라한 서술과 묘사는 불편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사적인 내용을 공개해도 되는가 싶을 때도 있다.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되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 신유진 작가(이자 번역가)가 자기 고백적 글쓰기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고민이 해소됐다. 모든 고백이 진실을 낳는 것은 아니며 고백에는 서사의 욕망이 개입되고, 그 욕망은 종종 진실을 변형하기도 한다는 글이었다. 모든 것이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 시대에 우리가 품어야 할 질문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 일지도 모른다는 신 작가의 문장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누구나 비밀을 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삶의 많은 장면을 기록했지만 끄집어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세상에 다 드러내야만 좋은 글이 될 수 있고, 그 솔직함이 글에 무게를 더할 것이라 여겼기에 오래 갈등하기도 했던 그런 장면들이다. 그러나 신 작가는 이렇게 단언한다.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안에 비밀로 남아 있을 때 힘을 갖기 때문이라고.
최근에 본 영화 ‘굿뉴스’ 속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은 이유를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여러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내 안의 반응일 때가 많다. 글쓰기는 내 안의 반응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이지만, 거기엔 나와 관계된 타인의 일상 또한 뒤섞여있다. 나의 솔직한 글쓰기로 가족이나 친구, 동료의 사적인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다. 반대로 타인의 글로 인해 내 의사에 반해 내 일상이 공개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 작가의 글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달은 우리 눈에 평면의 원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달이 삼차원의 구라는 걸 안다. 내가 굳이 뒤통수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독자들은 내 글의 뒤편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신 작가의 문장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글쓰기의 뒷면이 있다는 것을. 침묵을 기둥으로 세울 때, 당신의 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지혜를 건네주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