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

― 강경산 소금문학관에서 만난 박범신 작가

by Jasmine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시댁으로 내려가는 길에 강경산 소금문학관을 들렀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을 소재로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인데 문을 연 지 만 4년 만이었다. 박범신 작가, 하면 2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한번은 2010년 작은 수술로 병원에 며칠 입원했을 때 그 무렵 나온 작가의 신간 ‘은교’를 통증을 잊을 만큼 몰입해 읽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5년 작가의 강연을 아주 가까이서 들었던 경험이다.

2010년,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수술 후 진통제 부작용인 줄도 모르고 널브러져 있는 내게 의료진은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고, 몸을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고 채근했다. 결국 진통제 투여를 중단하고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병원 내 작은 편의점에서 그 무렵 출간된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보게 됐다. 신문에서 자주 접하면서도 그때까지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신문 연재소설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원에 갇힌 상황에서 만난 그의 책은 반가웠다. 통증을 잊을 만큼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은교’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 5년이 흐른 2015년 9월 23일 저녁, 덕수궁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문화재청 주관 행사였다. 정보력 좋은 친구가 재빨리 예약한 덕에 평소엔 출입할 수 없는 정관헌에 덧신을 신고 올라 ‘작가의 봄’이란 강연을 들었다. 30명 남짓만 정관헌에 오를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관헌 아래 마련된 대형 화면으로 강연을 들었다. 2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90분 동안 박범신 작가의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를 보고 들었다. 그날의 사진을 찾아보니 체크 남방의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작가는 불로의 명약이라도 먹은 듯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의 나이 만 69세였다.

다시 10년이 흐른 2025년 12월, 소금문학관에서 그의 일대기를 보는데 자연스레 10년 전 강연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아온 작가는 항상 젊은 학생들 속에서 지냈다. 청춘이었던 시인이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도 학생들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강연에서 작가는 젊음 속에서 홀로 늙어가는 것의 부조화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은교’ 속 이적요는 작가의 그런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현실의 작가를 추앙한 수많은 ‘은교’들 속에서 홀로 나이 들어가는 존재의 절망과 분노, 시기와 질투를 삭여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쉽지 않은 시간을 잘 견뎌낸 결과가 소금문학관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은교’를 다시 꺼내 읽었다. 당시 60대 중반의 작가는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다.


“지난 10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渴望)’이었다.”


이 문장은 15년이란 시간을 건너뛰어 곧 예순을 맞는 내게 화살처럼 와 꽂혔다. 우린 결국 갈망하는 존재였다. 젊은 날엔 사랑, 성공, 명성 등으로 분산됐을 갈망이, 젊음이 지나간 뒤엔 오로지 젊음에 대한 맹렬한 갈망으로 전환된다는 걸 아는 때가 바로 예순 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인 이적요에게 은교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자 시인의 지나가 버린 청춘, 어떻게 해도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시인은 은교를 사랑했다기보다 사라져가는 자신의 시간, 생의 감각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갈망이 팔순의 작가가 끊임없이 쓰도록 불을 지피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모자라는 필력으로 어떻게든 쓰는 사람이고자 하는 내 안에도 그런 갈망이 있어서라는 걸 알아차리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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