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Jul 24. 2021

18.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산다는 착각

ㅡ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살 뿐

8년 전 가을 EBS에서 노자 강의를 듣고 매료된 최진석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한 대학을 찾았던 적이 있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한 그의 강의는 시종 수강자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서 뭔가를 해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내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고민하느라 정작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아내에게 “혹시 다이어트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걸 마치 다이어트를 하는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니냐”며 진심을 말했다가 힘든 시간을 겪었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그건 일반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경험하는 회의도 마찬가지다. 본질에 다가가기까지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정작 실행되는 데는 거리감이 있는 회의, 회사 발전 방안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궁리하고 계획 세우느라 실제 회사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직접적인 행위로 이어지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대부분은 실질적 행위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그는 일상의 사건들에서 사유 거리를 찾아내는 철학자였다.      


그의 강의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자녀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공부와는 그리 친하지 않다는 그의 아들이 신통찮은 성적에 대해 “아버지가 힘들게 번 돈으로 지원해주셨는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을 때 최 교수가 아들에게 해준 말은 너무나 명쾌했다. “나는 네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고 내 삶을 위해 일을 하는데 네가 마침 내 아들이라 조금 혜택을 봤을 뿐이니 나한테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다만 네 인생을 위해 그렇게 해도 되는지는 생각해 봐라.” 대충 그런 취지의 말이었다.      


그동안 드라마나 책에서 숱하게 봐온 부모들의 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 마음대로 결혼을 해?' '네 마음대로 독립을 한다고?' '너 대학 보내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했어' 류의 말은 지금도 많은 자식을 사회인이 되기도 전에 부채의식에 사로잡히게 한다. 공들여 키웠으니 부모 입맛에 맞는 직업을 가지라거나 부모 기대를 충족하는 결혼을 하라는 건 무조건적인 사랑일 수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이런데 과연 자신을 제쳐두고 온전히 타인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간혹 이타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예전에 외국의 한 신부님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신부님은 어린 시절 가난에 찌든 속에서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어머니를 보며 자신도 남을 돕는 삶을 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고 보니 신부님은 자신의 삶이 남을 위한 삶이 아니라고 했다. 남을 도울 때 자신을 키워준 어머님의 은혜에 대한 빚을 갚는 기분이 들고 행복감을 느껴서 한 일이니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한 행위가 다행히 남에게 도움이 된 것이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신부님 얘기를 들으며 타인의 이기적인 행동에 번번이 열을 내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한다는 어떤 행위도 실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욕망에 따른 것이었을 뿐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그로 인해 혹시라도 내가 손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하는 좁은 마음 때문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힘들면 회사 그만둬도 돼. 내가 책임질게.”

많은 맞벌이 여성이 직장생활에서 힘든 고비를 만났을 때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코로나 와중에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으로 한창 고단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한 후배는 과로로 몸살이 났는데 남편이 빈말로라도 회사 그만두고 쉬라고 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했다. 후배를 사랑하는 나는 최진석 교수의 문장을 읊으며 전업주부를 선망하는 그녀의 마음을 돌려놨다.      


최진석 교수가 아들에게 말한 그 문장은 내 직장생활의 어떤 굽이에선 등대가 돼 주었다. 그 덕분에 한 번도 전업주부를 꿈꾼 적이 없다. 내 삶의 주체자로 성장하는 데 그의 문장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처럼 후배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건 후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직장생활의 후반전을 가슴 따뜻한 후배와 공유하고 싶은 내 욕망이 더 앞선 거였다. 이렇게 사람이 이기적이다.     

작가의 이전글 17.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