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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l 19. 2021

17.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착각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일한다

직장생활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취직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 시절에 눈 뜨면 출근할 회사, 자신의 책상과 컴퓨터가 있다면 신바람이 나서 다녀야 데 왜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일까. 코로나19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미 그전부터 피곤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는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퇴사하는 기술 등 회사를 그만두는 방법 등에 초점을 맞춘 책까지 앞다퉈 나왔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몇 년 전 한 지인이 자신이 출간한 책을 보내왔다.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 책을 척척 내는 그를 부러워하며 펼친 책에서 그는 회사에 출근하는 을 마치 신화 속 시시포스가 끊임없이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것에 비유했다. 그는 회사에 다니는 을 왜 그런 형벌에 비유했을까. 그를 만난 기회에 물었다. 그렇게 힘든 이유가 뭐냐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데다 임금도 낮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그 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글로 먹고살 수도 없고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곳도 없다면 지금 이 직장이 최선의 직장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월급은 적고 일은 많이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입장을 바꿔 직원을 고용하고 월급을 줘야 하는 고용주라면 임금을 책정할 때 어떤 마음일까. 월급을 받는 쪽과 월급을 주는 쪽, 양쪽 모두 합의한 임금이 바로 우리가 받는 월급이다. 그 월급이 (직원 입장에서) 아주 적거나, (고용주 입장에서) 아주 많다면 애초에 그 고용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심각한 저임금, 고노동이라면 노동자는 바로 그에 부합하는 월급을 주는 곳으로 옮겨갈 것이고, 고임금, 저노동이라면 고용주는 임금에 걸맞은 더 유능한 직원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인에게 말했다. 당신이 회사 다니는 게 힘들어 그만둔다면 회사는 바로 다른 누군가로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건 당신 자신의 선택이고, 당신이 그 선택을 했기에 매월 월급을 받아 그 돈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차도 바꾸고, 집도 넓혀갈 수 있다. 매일 일정 시간 당신의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그게 가능해지는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매일 바위를 밀어 올리는 마음으로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을 위해 한다면 덜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러고 얼마 전 또 다른 지인의 한탄을 들었다. 자신은 회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회사는 그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지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나는 오로지 내 삶을 위해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데 그는 회사를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회사를 위해 일을 했으니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나는 내 삶의 풍요를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사고, 뭔가를 배우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소소하지만 뭔가를 해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당신도 이제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위해 회사에 다니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번 소중한 돈으로 당신의 아이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주고, 집을 늘리고, 효도도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겠느냐.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일한 게 회사의 성장에 약간이라도 기여하게 된다면 회사도 성과급이나 보너스로 당신에게 보답하지 않겠느냐고.      


만약 남편이 회사 다니는 걸 마치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처자식은 말 그대로 고된 노동을 하는 남편의 등에 무임승차한 사람이 되고 만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또는 회사를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노동은 그 자체의 빛을 잃어버리고 시시포스의 고역이 된다. 내가 부모 형제도 없는 독신의 1인 가구라면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게 부양할 가족이 있든 없든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일은, 노동은 내 삶과 별개일 수 없다. 나는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또한 남편, 아들을 위해 일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를 위해, 좀 더 근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할 것이다. 나아가 모레도, 글피도 계속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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