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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ug 29. 2021

23. 영혼 없는 칭찬

―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30여 년 직장생활을 했지만 상사에게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전혀’가 아니라 ‘거의’라고 쓴 이유는 몇 번 듣긴 했는데 어떤 일에 대한 칭찬이었는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다. 그건 뭔가를 크게 잘해서 들은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스스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느낄 만큼 그 내용이 알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칭찬을 거의 듣지 못해서인지 나 또한 후배들에게 칭찬을 잘하는 선배는 아니다. 칭찬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정보와 그때그때 필요한 업무 내용을 알려주는 데 더 능하다. 후배들에게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니 그게 칭찬에 인색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칭찬을 받는 것에도, 하는 것에도 소질이 없는 것일까. 의식을 더듬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2003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Whale Done! :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는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난 후 심리 공부의 한 과정에서 이 책을 접했다. 기업이 잘 되려면 최고경영자는 그 직원들이 역량을 최대치로 펼치도록 칭찬을 시의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조직 관리 도서로서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서로 더 불티나게 팔렸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라면 세계에서 첫꼽힐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꽤 여러 해 동안 칭찬 열풍을 불러왔다. 고래도 춤추게 할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칭찬의 효과에 매료된 엄마들은 앞뒤 맥락 없는 칭찬 세례를 자녀들에게 쏟아부었고 그 칭찬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느덧 20대가 됐다. 그 아이들은 과연 정서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잘살고 있을까. 요즘 위로와 칭찬에 목마른 사람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위로와 칭찬만으로 그들을 신바람 나게 만들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의 저자 켄 블랜차드는 기업교육으로 유명한 회사의 회장으로 조직 관리와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다. 이력만 봐도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책에서 한 회사의 임원은 어느 날 한 해양수족관에서 바다의 포식자로 불리는 범고래가 물 위로 3m나 점프하는 고래쇼를 관람하게 된다. 그 환상적인 쇼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던 그는 범고래 조련사를 만나 ‘고래 반응(Whale Done Response)’이란 훈련법에 대해 듣게 된다.      


“고래가 한 가지 묘기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즉각적으로 칭찬(먹이)하라

고래가 실수한 부분이 아닌 잘한 부분에 대해서만 반응(먹이)하라

고래가 성공한 묘기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먹이)하라

계속해서 묘기를 성공시켜 나가도록 격려(먹이)하라”    


‘고래 반응’은 기업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맞게 변주돼 많은 회사에서 조직을 관리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넓은 바다에서 좁은 수족관으로 잡혀 와서 조련사가 던져주는 칭찬(먹이)에 조금씩 반응해 3t에 육박하는 몸으로 3m나 점프하는 범고래. 그 고래쇼 덕에 해양수족관은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높은 수익을 냈을 것이다. 이 책은 직원들을 독려해 최고의 이익을 내려는 기업가들에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 막강한 칭찬의 힘으로 아이들의 학업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학부모들에게도 필독서가 될 만했다.


하지만 난 그런 방식의 유능한 조련사도, 춤추는 고래도 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 그 고래를 춤추게 하는 데 필요한 칭찬이 과연 고래에게도 좋은 것일까. 고래에겐 넓은 바다를 맘껏 유영할 권리는 없는 것일까. 고래가 흥에 겨워 하는 점프가 꼭 3m나 돼야 할까. 그 칭찬의 기술을 범고래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닌 성인을 상대로 써서 나와 상대는 뭘 얻을 수 있을까. 뭔가를 얻는다면 그게 우리의 관계에 과연 좋은 것일까. 그런 의문이 내가 칭찬 기술자로서 성공하는 걸 막았던 듯하다.     


책을 읽었을 무렵의 불편한 느낌 때문인지 지금도 누군가에게 칭찬을 하려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마음이 된다. 만에 하나라도 팀장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후배들에게 칭찬이란 미끼를 던지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후배들이 더 열심히 일해 무결점의 업무 성과를 내게 하려고 칭찬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거대한 범고래를 호령 한마디, 손짓 한 번으로 온갖 묘기를 부리게 하는 것, 칭찬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그러나 후배들은 범고래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업무 밀도를 높이고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갈 역량을 지닌 존재다. 나와 후배들은 서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함께 발전해갈 동료들이지 칭찬으로 ‘우쭈쭈’ 해야 될 미숙한 존재들은 아니라고 믿는다.      


애정이 담긴 말이 굳이 칭찬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은 입으로 구사하는 어떤 문장보다는 비언어적 수단, 즉 말을 건넬 때의 표정이나 제스처로 더 강력하게 전달된다. 간혹 입으로는 긍정의 문장을 구사하면서 눈빛이나 표정은 냉소적인 사람을 보게 된다.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본질은 상대에게 얼마나 진심을 다하는지에 있다. 의도가 담긴 칭찬, 영혼 없는 칭찬에 춤출 만큼 칭찬에 목마르다면 그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할 때라는 신호다. 내 안에 있는 자기 긍정, 자기 사랑의 샘이 메말랐다면 그 샘에 다시 마중물을 부어야 할 사람은 살기 바쁜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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