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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Sep 05. 2021

24. ‘내 주제’를 알게 한 여행

― 자신을 잘 안다는 착각

지난해 여름 금요일 근무 마치기 무섭게 달려간 휴가지에서였다. 예약한 방에 문제가 있어 냉장고에 챙겨 넣은 먹거리며 풀었던 짐을 다시 꾸려 방을 옮기고 난 뒤였다. 남편은 발코니에서 숯불구이 만찬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세상 귀찮은 짐 꾸리고 푸는 걸 반복한 나는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몇 분만 쉬어야지 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풀 먹인 이불 커버에서 나는 기분 좋은 소리와 다리에 감기는 시원한 느낌을 만끽하려는 찰나, 남편이 나를 찾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며 이불을 들추는 순간, 나는 용수철 튕기듯 거실로 뛰어나가며 “아아악~~ 지네, 지네 ~~”를 외쳤다. 날카로운 비명에 놀란 남편이 방으로 뛰어들어가 하얀 이불에 붙어 있던 생명체를 잡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그게 지네가 아니고 그리마라고 했다. 지네보다 덜 위험한 벌레라고 설명했지만, 내겐 모두 징그럽고 끔찍한 벌레일 뿐이었다. 남편이 그때 날 부르지 않았다면 그 벌레가 내 옷 속으로 파고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그리마는 그 후로도 나 혼자 침실에 있는 순간마다 두 번이나 더 출현했다. 그 벌레는 내가 원시적 공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상기시켰다.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언덕배기 펜션이 내게는 마치 ‘체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자연의 현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자모기향을 꽂았는데도 시커먼 모기는 호시탐탐 나만 노렸다. 없는 순발력에 손바닥 가득 체중을 실어 서너 마리나 때려잡았지만, 거긴 사방이 모기와 그리마, 날벌레 천지였다. 모기들의 취향은 오로지 나였다. 모기가 좋아하는 혈액의 취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그곳 펜션에서 깨끗이 날려 보냈다.  

   

그리마 소동은 오래전 기억을 소환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들어간 직장에 주말마다 산에 다니는 선배가 있었다. 가족의 암 치료에 도움을 주려고 약초를 캐러 다니다 산의 매력에 빠진 선배는 각 계절에 따른 비박 경험을 재미나게 들려주곤 했다. 가을밤 침낭 위에 낙엽 이불을 덮고 잘 때 바람에 사각대는 낙엽 소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라거나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하는 겨울철 밤하늘에 펼쳐지는 황홀한 별들의 축제 같은 이야기는 비박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겨울 추위는 자신이 없어서 가을 비박을 꼭 하게 해달라고 선배에게 꽤 여러 번 청했다. 그런데도 두 번의 가을을 선배는 내 청을 은근슬쩍 뭉개고 넘어갔다. 그땐 그게 꽤 서운했는데 오늘 소동으로 모든 게 분명해졌다. 그때 선배는 나를 산에 데려갔다간 재난 영화를 찍기 십상이라는 걸 알았던 게 분명하다. 베테랑들 산행에 나 같은, 특히나 추위와 벌레에 취약하고, 겁도 겁나 많은 나를 자연 한가운데로 데려가는 건 말 그대로 그날 산행을 망치는 행위였을 테니까. 선배는 내가 모르는 나를 일찌감치 꿰뚫어 봤던 것이다. 그러고 18년이 지나 영종도 펜션에서 내가 비박과는 가장 먼 지점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싱글 시절 여름휴가는 8월 광복절 무렵 템플스테이(템스)였던 적이 많았다. 그땐 나 자신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절집에 끌리는 게 내 안의 신심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절집의 경건한 분위기와 정갈한 환경, 담백한 공양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모든 게 명백해졌다. 2박 3일 남편과 함께 여행하려면 아이스백부터 시작해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한두 끼니만 준비하는 데도 준비물이 차 트렁크 가득이었다. 내 안엔 경건함 같은 게 머물 여유가 없었다. 내 에너지를 아끼는 데 최상의 조건을 가진 템스를 본능적으로 선호했을 뿐이었다. 남편이 내 본심을 모르는 건 그의 행복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나 또한 그 본심을 알아차린 게 얼마 되지 않았으니 가책까지는 느끼지 않으려 한다.      


지난봄 남편이 여행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템스를 제안했는데 이미 절집은 만원이었다. 해외여행이 묶인 시절이라 서울 근교엔 금, 토 연박이 가능한 절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영종도 펜션을 잡았다. 차로 1시간 거리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시 트렁크 가득 짐을 꾸려 떠났다. 남편은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짐 꾸리는 것까지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나는 준비물 챙기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아까웠다. 템스는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게 가장 좋은 힐링스테이였다. 칫솔과 책만 들고 가서 뒹굴거려도 밥때 되면 하루 세 끼가 제공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또 다른 기억 하나, 오랜 싱글 시절, 상경 후 맨 처음 원룸에 살 때부터 결혼 직전까지 이사할 때마다 친구들, 회사 선후배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절친들을 수시로 초대해 정성껏 상을 차리곤 했다. 그들은 결혼 후 내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나 또한 그럴 줄 알았다. 결혼 100일이 지나기 전에 성대한 집들이 초대를 기대했던 선후배들은 내 현실 밥상 이야기를 듣고 ‘아니, 선배가?’ ‘아니, Jasmine 네가 그럴 수가!’였다.    

  

실은 나도 그 변화가 놀라웠다. 내가 불량주부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혼 전엔 한 번도 주문한 적 없던 레토르트 식품 단골 주문자가 됐고, 주문의 영역은 점차 넓어졌다. 초기엔 내 몸 좀 편하자고 인스턴트식을 주문하는 게 마음에 걸렸으나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면서 마음은 어느새 몸의 무게에 굴복했다. 식탁에서 국을 뺌으로써 염분 섭취를 줄여 남편 건강을 위하겠다는 건 허울이고, 실상은 국 끓이느라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던 거였다. 평일 저녁 메뉴는 어느새 바나나 달걀 주스에 샐러드 한 접시로 간소화됐다. 물론 영양학적으로 부족하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도 그렇지’에 가까웠다. 얼마 전 우리 집 상차림을 전해 들은 남자 선배들은 처음엔 너무하다, (남편이) 안됐다 등의 반응을 보이다가 뒤이어 안도하는 표정이 된다. 그 표정은 ‘그래도 내 집사람은 국은 끓여준다’는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그리마 소동은 ‘내 주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타인은 물론,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단 한 번의 소동으로 알게 됐다. 이래서 여행이 필요하고, 그 경험은 소중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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