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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22. 2021

30. 내 돈 찾아 쓰기가 이리 어려워서야!

- 비밀번호와의 전쟁

이런 시대를 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휴대전화 터치 몇 번이면 다음 날 아침 신선한 먹거리가 현관 앞에 놓여 있는 꿈같은 일이 일상다반사가 될 줄은. 딱히 디지털적 인간이 아니어도 휴대전화만 손에 쥐면 온갖 것이 집 앞으로 배송되는 시대. 그러나 디지털 세상은 내게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50대는 경계선의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했고 앞으로 인공지능(AI) 등 또 다른 시대를 노년에 제대로 경험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느린 시대의 여유도 알고, 빨리빨리 시대의 편리함도 알지만 다가올 시대의 속도 앞에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인생의 황금기(물론 그때는 몰랐다)인 30대 초반 회사 책상에 브라운관 컴퓨터가 놓이기 시작할 때의 생경함과 막연한 두려움을 지금도 기억한다. 뒤이어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해외여행에 맛들 즈음 외환위기가 닥쳤다. 회사는 휴업하고 1년여 실업 급여를 받으며 이런저런 과정을 배우다 다행히 서울로 직장을 구해 오면서 1년여 실직 기간은 다음 챕터를 위한 좋은 도움닫기 기간이 됐다. 


그러나 내가 살던 지방 도시에서 느리게 흘러가던 삶이 서울로 옮겨온 이후 인터넷을 계기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10년 남짓 만에 멀미를 느낄 만큼 빠른 속도의 경쟁 열차에 탄 듯한 느낌이 든다. 코레일톡에 오랜만에 접속을 했더니 로그인 상태가 해제돼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이런 순간마다 타고 가던 기차 끄트머리에서 겨우 난간을 붙잡고 매달려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익숙한 비밀번호 몇 개를 눌렀지만 역시나 맞지 않았고, 5번 잘못 입력하면 접속이 제한된다는 경고문이 뜬다. 다행히 비밀번호 찾기를 눌러 가까스로 2주 후 시댁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김치냉장고를 바꾸려고 애용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2개 모델을 골랐다. 그런데 남편이 가격 비교 사이트를 검색해보더니 15만 원 정도 저렴하게 파는 곳을 알려줬다. 마침 내가 오래전에 회원가입을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용한 게 거의 5년 전 일이라 아이디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겨우 아이디를 찾고 비밀번호를 바꾸는 데만 20여 분을 헤맸다. 일상적으로 접속하는 사이트가 아니면 새로 접속할 때마다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아이디, 비밀번호 울렁증이 생길 지경이다. 


겨우 아이디를 찾고 새 비밀번호를 만드는데 영문, 숫자, 특수문자를 조합하라는 문구가 떴다. 현재 쓰고 있는 비밀번호 뒤에 특수문자 ‘&’를 넣었는데도 계속 ‘영문, 숫자, 특수문자를 조합하라’는 문구가 떴다. 뭘 잘못 터치했나 싶어 한 자, 한 자 마치 지뢰라도 터질세라 조심조심 12자리를 터치했는데 같은 문구가 지치지도 않고 다시 떴다. 눈은 점점 아프고 목덜미도 당기기 시작했다. 로그인 절차 앞에서 가로막히는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게 무섭기까지 했다. 10번쯤 같은 12자리를 누르다가 지쳐 한 번만 더해보자는 마음으로 맨 마지막 특수문자를 %로 바꿨더니 드디어 접속이 됐다. 와우 하며 환호하는 내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깜짝 놀라 날 쳐다보는 남편을 보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지금도 &는 특수문자가 아니고 %는 특수문자라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 인터넷뱅킹을 개설했다가 어쩌다 가끔 쓰려고 할 때마다 비밀번호에 막히고 본인 인증에 막혀 이용하는 걸 포기한 적이 있다. 다행히 회사 로비에 ATM이 있어 급한 불은 껐지만, 내 통장에 든 내 돈 쓰기도 이렇게 어려워서야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살아갈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최근 들어 다시 휴대전화에 앱을 깔고 되도록 자주 접속해 사용법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처럼 둔한 사람의 지능을 능가하는 AI가 일상화되면 또 어떤 어이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지 가슴이 콩닥거린다. 남의 돈을 귀신같이 빼내가는 스미싱, 피싱, 파밍 등 일상이 된 사이버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내 돈 찾아 쓰는 것도 쉽지 않은 나의 앞날이 참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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