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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n 12. 2022

43. 그놈이 왔다

— 내 민낯을 보고 말았다

물 샐 틈 없이 방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정집에 홀로 계신 구순의 아버지를 돌봐드리러 다녀야 하니 방역은 더더욱 철저히 했다. 장갑도 끼고 다니고 엘리베이터 버튼, 문고리, 버스 손잡이 등 어디도 맨손으로 접촉하지 않았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데도 더 열심히 운동하고 마사지도 받았다.      


그랬는데 다음 날 아침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혼자 병원에 입원할 요량이었는데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남편은 집 앞 병원으로 나를 태워 갔다. 내과에서 진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동안 간호사가 열을 재 체온계를 보더니 다시 귓속체온계로 체온을 쟀다. 38도였다.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어이없게도 양성이었다. 그동안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수시로 자가진단키트를 했고 그 전날도 진단키트는 음성이었다. 내가 양성이라면, 남편은? 했는데 역시나 양성이었다. 지난 며칠간의 컨디션 난조가 한 번에 이해가 됐다. 한편으론 극심한 피로감의 이유를 알아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당장 아버지 돌보는 거며 전날 만난 후배며, 마사지숍이며 큰일 났다 싶어 아픈 와중에 여기저기 전화로 확진 사실을 알렸다. 남편 또한 전날 만난 사람들과 회사에 확진 사실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코로나 확진자는 의사 대면이 안 된다고 해 간호사에게 근육통, 인후통, 기침 등 모든 증상을 낱낱이 밝혔다. 반면 남편은 아무 증상이 없었다. 그렇게 7일 치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침 약을 먹고 드러누웠는데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열도, 인후통도 아침과 그대로였다. 혹시라도 내 증상이 남편에게 옮아가기라도 할까 봐 따로 방을 쓰자고 했기에 그나마 기침은 맘 편히 할 수 있었다.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몇 술을 뜨고 점심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런데도 열이 내리긴커녕 온몸이 더 심하게 아팠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약 봉투에 인쇄된 처방 내용을 살펴보니 해열제도, 진해거담제도 없었다. 위장보호제를 빼고 나면 소염진통제, 항알레르기약이 전부였다. 병원에 전화해 간호사에게 열이 38도나 되는데 왜 해열제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정 상비약인 타이레놀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뒤늦게 간호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자기 약 봉투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 아무 증상이 없는 남편 약에는 해열제, 진해거담제까지 나보다 2알이나 많았다.     

 

아무래도 이상해 다시 병원에 전화했지만 계속 상담원이 다른 전화를 받고 있다는 안내만 나와 내 번호를 남겼다. 처음엔 약국에서 내 약과 남편 약을 실수로 뒤바꿔 넣은 줄 알았는데 남편의 약 봉투에 쓰인 알약과 개수가 일치해 봉투를 바꿔 넣은 것 같진 않았다. 남편은 자기에게 처방된 약 성분을 살펴보지도 않고 벌써 아침, 점심 약을 먹은 상태였다. 오후 5시쯤 병원 간호사의 전화가 왔다. 남편 약과 내 약이 바뀐 건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간호사는 자기 말부터 들어보라며 무지한 환자를 가르치듯 말했다. 무슨 깊은 뜻이 있나 싶어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간호사는 (내과 의사가) 남편 약은 예방적으로 처방한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고열 환자에게 해열제 처방도 하지 않고 아무 증상도 없는 사람에겐 열과 기침 등을 예방할 목적으로 온갖 약을 처방했다는 간호사의 궤변. 고열로 헛소리가 나올 것 같은 건 난데 한의원 간호사도 아닌 양방 간호사 입에서 나온 ‘예방적 처방’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환자 상태를 의사한테 제대로 알리긴 한 거냐, 의사가 그렇게 답한 게 맞느냐고 물으며, 의사 바꿔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자기가 의사한테 잘못 들은 걸 수도 있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 통화 후 탈진하듯 침대에 쓰러졌다. 남편이 차린 저녁을 겨우 몇 술 뜨고는 남편에게 처방된 약을 먹고, 남편은 약을 끊었다.      


확진 2일 차인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열이 37도 정도로 내렸다. 근육통, 인후통은 덜해졌으나 가래, 기침은 여전했다. 밤이 되자 다시 열이 오르고 상태가 나빠졌다. 밤새 끙끙 앓다 확진 3일 차 아침, 코로나 환자를 대면 치료해주는 병원으로 가 수액을 맞았다. 3시간 동안 두 팩의 각기 다른 수액을 맞고 나니 그제야 눈이 떠졌다. 약도 새로 처방받았다. 그날 저녁부터 열이 조금 내렸다. 4일 차에도 미열은 여전하고, 인후통으로 목은 더 잠기고 기침, 가래 또한 별 차도가 없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남편은 팔다리에 발진이 발갛게 올라왔다며 내 방으로 왔다. 남편은 피부과 의사가 대면진료를 하는 다른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맞고 발진을 가라앉히는 약을 지어왔다.      


5일 차 아침 다시 상태가 나빠져 수액을 맞았다. 약 기운에 까라져서 어딘지 모를 곳을 헤매다 잠깐씩 정신이 들면 내가 앓는 소리에 내 방으로 와 걱정스레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곤 했다. 그렇게 침대와 한 몸이 돼 지냈다. 마치 긴 세월 새벽 출근하느라 모자랐던 잠을 벌충이라도 하듯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6일 차, 7일 차에도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힘든 상황에 처하면 그 사람의 바탕이 드러난다는 걸 살면서 적잖게 경험했지만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다. 온갖 코로나 증상을 겪는 와중이었던 확진 8일 차에 여동생네서 지내시던 아버지가 척추 압박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고위험군이 아니어서 입원도 할 수 없는데 전문 간병인의 돌봄을 받으며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잠시 잠깐이긴 했지만 부러웠다. 그다음에야 구순의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남편의 환갑 하루 전인 확진 11일 차엔 내 상태가 다시 나빠지면서 가족 모임도 취소하고 둘만의 외식도 할 수 없게 됐다. 환갑 전날 미역국 등 간단한 생일상 장보기도 남편에게 부탁해야 했다.      


나이 들어간다고 모두 이렇게 비겁하고 이기적으로 변해가진 않을 텐데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됐을까.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부모님 와병과 내 건강 악화가 일상의 기쁨을 앗아가고, 그로 인해 가족에 대한 애정마저 흐려진다는 사실이 더없이 슬픈 시절이다. 약 처방 문제로 병원 간호사와 통화하면서 그렇게 화를 낸 것도 어쩌면 못난 나 자신에 대한 엉뚱한 화풀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조차도 확진 3주가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화장 안 한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의 민낯도 봐줄 수 없을 만큼 못났다. 코로나가 그걸 알려주려고 나를 찾아온 것만 같다. 그것도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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