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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16. 2020

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남편이 읽는 책을 곁눈질하다 피에르 바야르를 알게 됐다. 현재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에서 독서와 비독서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논리로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낯선 논리를 내세운 그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매일같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마음의 양식'을 제대로 섭취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나의 독서법은 정독보다는 통독(通讀), 적독(摘讀:띄엄띄엄 가려서 읽기) 등 휘리릭 훑어보기 식으로 변했다. 스마트폰의 일상화가 가져다준 변화라고 변명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켕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진, 동영상 등 몇 초 사이에 시각적 변화가 극적인 스마트폰에 길든 뇌가 예전처럼 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 언급된 다른 책까지 가지를 뻗듯 파생해서 읽어내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한다. 그는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나온 한 사서의 말을 인용해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탠다. 대단한 독서가가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친다고 해도 그가 어떤 책을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그 책 외의 다른 모든 책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사서는 그런 이유로 자기가 맡은 도서관의 그 어떤 책도 읽지 않음으로써 도서관의 모든 책에 대해 알 수 있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맡은 책의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 읽지 않는 거라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서 ‘총체적 시각’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도서관학이란 학문을 생각하면 ‘총체적 시각’의 의미가 보다 명료해진다. 어느 한 분야 책들만 읽거나 여러 분야의 책 몇 권씩을 읽는 정도로는 다양한 분야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에서 전체적인 균형감각을 가지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철도 노선표를 언급하기도 했다. ‘노선표’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나 또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4분의 1도 읽지 않았는데 바야르가 하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가령 내가 지하철 안내자라고 할 때 승객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1호선에서 9호선(거기다 경의중앙선, 분당선 등 여러 노선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까지 모든 지하철을 타보고 각 역에 일일이 내려서 그곳의 풍경이 어떤지, 그 역엔 어떤 역사가 있는지 등을 통달하려면 아주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노선표(책으로 치면 목차에 해당)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익힌다면 화곡역에서 서울역을 가려면 어디서 환승해야 하는지, 고속터미널에서 분당으로 가려면 어느 어느 역에서 몇 번 환승해야 하는지 등 승객들에게 최적화한 맞춤 안내(일종의 컨설팅)를 그때그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언급하는 철학자나 작가들의 명문장은 사람들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명저들은 한 번도 그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온 적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령 카르페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은 여기저기서 자주 인용되지만 정작 그 문장을 처음 시집에 언급한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집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니체의 ‘아모르파티’, 해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 왔다. 비록 읽지 않았어도 그 책에 담긴 명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 왔고 그 이해 덕에 이만큼이라도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크 트웨인을 좋아한다. “단 한 번 흘낏이라도 보고 나면 지구의 나머지 나라를 모두 본 것보다 더 강렬한 나라”라는 인도 예찬론에 생애 처음 가족과 함께가 아닌 혼자만의 인도 여행을 시도했고, 그 여행을 다녀온 뒤에야 나는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럼에도 트웨인의 책이라곤 소설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를 읽은 게 전부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자주 그를 입에 올리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다음 말을 이정표 삼아 책 쓰기를 꿈꾼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바야르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책에 대한 불편한 마음-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뚝딱뚝딱 읽어내고 싶은 마음과 실제론 한 달에 한 권 완독하기에도 급급한 현실 사이에서 나의 게으름을 자책하는 것-을 다독여주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합리화를 게으른 자의 변명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바야르 덕에 나는 그가 이 책의 후속작으로 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까지를 구해 읽기로 했다. 절판된 책이라 남편이 수소문해 정가의 3배를 주고 중고책을 구했다. 바야르의 미덕은 나처럼 게으른 독자에게 책을 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고 독서에 대한 의욕과 생기를 불어넣는 데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코로나의 터널 안에 갇힌 듯한 이 시점에 충족하기 힘든 여행의 욕망을 그의 책이 어떻게 달래줄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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