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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18. 2020

5.오래된 것들과의 결별

- 시절인연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이사하고 이틀이 지난 일요일, 남편과 아들은 자기 방 정리를 거의 마쳤다. 문제는 내 방이었다. 장롱 회사에 늦게 이사 신청을 하는 바람에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갈 즈음에야 해체된 장롱이 들어오고 뒤늦게 재조립이 이뤄지면서 내 옷들은 갈 곳을 잃고 작은방 침대 위며 안방에 산을 이루고 있었다. 책꽂이에는 내 분류법이 아닌 이삿짐센터 사람들의 편의대로 책들이 마구 꽂혀 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책들은 뒤죽박죽인 채 방바닥에 쌓여 있었다. 오후 5시 즈음에야 장롱 조립이 끝나 옷 정리를 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책은 남편이 한쪽으로 쌓아주기라도 할 수 있는데 옷 정리는 남편이 도와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전 집에서 이사 준비를 하면서 남편과 나의 큰 차이점을 깨달았다. 남편은 이사를 앞둔 주말 내내 버리는 데 집중했고 그 일에 아주 능했다. 남편은 몇 년 안 쓴 물건은 새것이라도 미련 없이 버렸다. 나는 그가 버리는 멀쩡한 물건들에 마음이 쓰여 내 물건을 정리할 여유도,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편의 손을 떠난 물건이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쌓여 그 부피가 커질수록 그게 마치 내 물건을 버리라는 압박처럼 느껴져 내 신경은 고슴도치처럼 곤두서 있었다. 남편은 물건을 버리는게 마치 복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기라도 한 듯 신바람이 나서 버리고 또 버렸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이틀 만에 남편의 물건으로 빵빵해졌다. 


남편은 자기 물건 정리가 끝나자 여기저기 가득 찬 내 옷과 책은 물론, 갖가지 주방소품들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책장 앞에 서 있으면 난 얼른 그 뒤에 가서 “이 책들은 글 쓰는 데 꼭 필요해요. 모두 인문학 관련 책들이라 버릴 게 없어요”하고 징을 박았다. 그러면 남편은 아쉬운 얼굴을 하고 물러났다. 그러다 어느 겨를에 보면 장롱을 열고 빽빽이 걸린 내 옷들을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10년 넘게 간직했던 추억의 옷들을 추려냈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입는 옷보다 입지 않는, 몸이 불어 앞으로도 입을 가능성이 없는 옷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억지 옷 정리가 끝나고 나니 이번엔 베란다 쪽 벽장에 가득 쌓인 내 구두들 차례였다. 열 번도 채 신지 않은 날아갈 듯한 뾰족코 힐들이 각기 다른 상자 속에서 남편의 손길에 햇빛을 보게 됐다. 빨간색 힐, 앞코가 뚫린 힐, 너무 높아 내가 언제 저걸 신었을까 싶은 부츠 등 10켤레가 넘는 구두들이 내 손에 의해 쓰레기봉투 속으로 던져졌다. 젊은 날 한때 나를 돋보이게 했던 물건들을 내 손으로 버리는 건 너무 가혹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린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양손 가득 옷과 신발을 들고 재활용함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옷과 구두들을 넣는데 빨간색 힐을 본 아들이 "이건 새 건데요?"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다시 품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지만,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내가 신을 일은 이제 없을 테니. 좋은 데로 보내주자."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이번에 주방 바닥에 내 살림들이 한가득 나와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나와 함께해 분신처럼 여겨지는 반려물들을 낡았다고 고려장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엔 싱글 시절 15년 넘게 내게 주스를 만들어주며 헌신했던 믹서와, 그 주스를 회사까지 안전하게 품고 가 내 아침 식사 그릇 역할을 했던 플라스틱 컵이 있었다. 결혼하면서 그대로 들고 온 그 물건들은 싱크대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갑자기 대낮에 주방 바닥으로 끌려나온 것이다. 믹서 칼날의 성능은 여전했지만 플라스틱 용기와 컵은 밝은 불빛 아래서 보니 여기저기 긁힌 흔적으로 성한 구석이 없었다. 남편은 쓰레기봉투까지 대령해놓고 분부만 떨어지면 바로 쓸어 담을 태세인데 내 마음은 그 물건들과 헤어질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성능이 여전하다는 이유를 대며 믹서는 뒤로 빼놓고 플라스틱컵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호기롭게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 사람을 버리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명품도, 고가품도 아닌 플라스틱이며, 유행 지난 옷이며, 수건 따위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문득 한 달 전에 남편의 제안으로 보게 된 연극 톡톡(TOC TOC)이 떠올랐다. 각기 다른 강박증을 가진 6명의 환자가 정신과 대기실에서 의사를 기다리며 벌이는 에피소드를 다룬 연극이었다. 맨 처음 등장한 사람은 정년이 가까운 뚜렛증후군 환자였다. 틱의 일종이었는데 그는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다음에 등장한 40대 남성은 계산벽 환자였다. 모든 걸 수치로 계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 병원에 예약하고 기다린 게 1년 몇 개월인데 날짜로 계산하면 며칠이고 시간으로 계산하면 몇 시간, 분으로 계산하면 얼마인지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 와중에 등장한 하얀색 정장 차림의 여성은 첫눈에도 성마르게 보이는 결벽증 환자였다.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소독제를 뿌려대고 누군가와 옷깃만 스쳐도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뒤이어 등장한 여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노처녀인 확인강박증 환자였다. 시시때때로 가방에 열쇠가 있는지, 집의 가스를 잠갔는지, 전기 스위치를 끄고 왔는지를 반복적으로 걱정했다. 이어 들어온20대 여성은 동어반복증 환자였다. 같은 말을 똑같은 제스처와 함께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대칭집착증 환자인 20대 남성이 등장했다. 그는 머리 가르마도 정중앙으로 탔고, 초록색 옷을 입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정중앙에 있는 색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러 간 연극, 모두 어느 한 부분은 많이 부족하거나 너무 넘치는 환자들의 에피소드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사이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는데 어디 한군데쯤 아프지 않은 현대인이 없구나 하는 자각이 절로 찾아왔다. 내게 부족하고 아픈 부분은 나보다 더 가졌지만, 다른 부분은 나보다 부족한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꽤 강렬한 연극이었다. 내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그 연극이 떠오른 건 다행한 일이었다. 제각각의 강박증을 가진 환자들이 지금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알아차림이 바늘 끝처럼 곤두서던 내 신경을 어르고 달래주었다. 아, 내게는 저장강박증의 징후가 있었구나, 남편 말처럼 언젠가는 쓰이겠지 하며 여기저기 쌓아두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엔 그 물건이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못 찾아 결국은 쓰지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면서도 오래되고 제 할 일을 다한 물건들 쌓아 뒀던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사람도 인연이 다하면 놓아줘야 하는데 나와의 인연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끌어안고 있었던 그 물건들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 물건들에 스민 제각각의 추억을 붙잡고 놓지 못한 나를 쓰다듬었다. 시절인연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번 주말엔 더 많은 시절인연들을 방생하는 마음으로 놔줘야겠다. 내 방만 정리되면 이번 집은 정말 구조도, 전망도 너무나 훌륭하다. 나만 중심을 잘 잡으면 모든 게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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