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Oct 24. 2022

50. 구순(九旬) 아버지가 사라졌다

―치매 아버지와 자녀들의 웃픈 일상

늦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달 카페에서 한창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하며 전화기가 진동을 했다. 여동생 이름이 떴다. “왜?” 하는 한 음절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동생은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하아~.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당신 집으로 가셨을 거야. 내가 좀 있다 (아버지 집에) 전화해 보고 거기 계시면 바로 가 볼게.” 그렇게 여동생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는데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았다. 

     

엄마가 쓰러지고 1년 반이 지났다. 처음 6, 7개월간, 타고난 낙천가인 아버지는 곧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셨는지 그전과 별다르지 않게 TV와 친구 삼아 잘 지내셨다. 우리 삼 남매는 번갈아 아버지 집으로 매일같이 끼니를 준비해 드나들었다. 원래 번잡한 걸 싫어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할 정도로 집 안에서 쓸고 닦고 사소한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길 즐기는 성품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 언제부터 균열이 생겼던 걸까. 엄마가 입원한 병원을 오가느라 바빠 아버지 속이 어떤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치매 판정은 충격이었다. 때마침 여동생네가 비게 된 건 그중 다행이었다. 제부는 지방에서 일을 하게 돼 주말에만 집에 왔고, 조카는 입대를 했다. 집도 넓고, 반려견 ‘장군(8살 초코 푸들)’도 있어 아버지가 지내시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여동생 또한 그동안 아이 키우느라 친정 부모님께 해드린 게 없다며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여동생네 머물게 됐고, 난 여동생이 낮에 집을 비울 때마다 아버지 식사를 챙기러 여동생 네로 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하셨다. 넘어진 적이 없다 하시는데 하루아침에 일어나질 못하시니 비상이 걸렸다. 병원에선 척추 압박 골절이라고 했다. 골밀도가 낮아진 노인들에게 특별한 사고 없이도 발생한다며 절로 뼈가 붙을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몇 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은 여동생이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돌보는 건 무리였기에 병원으로 모신 후 간병인을 쓰기로 했다. 2주가 지나도 아버지는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병원에선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해 이번엔 간호사가 있는 요양원으로 모셨다. 다행히 3주 만에 척추가 아물었고, 아버지 정신도 치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맑아지셨다. 아버진 다시 여동생 네로 퇴원했고, 나와 남동생네는 번갈아 여동생네를 오갔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여동생이 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전 여동생네 갔을 때 아버지 컨디션이 꽤 좋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무작정 집을 나가 길을 잃거나 하시진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당신이 좋아하는 운동화며 속옷 등을 챙겨 가신 흔적이 있다니 당신 집으로 가신 게 분명해 보였다. 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쯤 울렸을 때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하지 마라!”며 전화를 딱 끊는 아버지. 여동생에게 뭔가 서운했던 게 분명했다. 다시 전화를 걸자 아버지가 수화기를 들었고, 나는 내 이름을 큰소리로 빠르게 외쳤다. 막내딸이 아닌 큰딸이란 걸 알아차린 아버지는 “◯◯냐?”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응하셨다. 얼른 가족 단톡방에 아버지가 당신 집에 계신다는 걸 알리고 서둘러 친정으로 갔다.  

    

잘 정돈된 집 소파에 기대앉은 아버지 표정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왜 말도 없이 집으로 오셨냐는 내 물음에 아버지는 “장군이 팔아치우기 전까진 절대 안 간다”고 하셨다. 구순의 아버지에게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개’는 못마땅한 존재였다. 게다가 여동생 부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니 아버지가 소외감을 느끼신 거였다. 베란다에서나 키워야 할 개가 소파며 침대며 사람 가는 데는 어디든 발 빠르게 자리 잡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런 환경이 아버지 혼자 지내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데도 구순의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버지가 의사도 놀랄 정도로 몸과 정신이 빠르게 회복된 데는 막내딸의 세심한 보살핌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진 당신이 막내 딸네서 개밥 주고, 개똥 치우고, 빨래 걷고, 신문 가져오는 등 집사로 부림을 당했다고 여기신다. 그게 막내딸에게 아무 말 없이 당신 집으로 돌아온 이유였다. 여동생은 졸지에 치매 아버지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잡다한 집안일 시킨 나쁜 딸이 됐다. 이제 나와 남동생네의 발길은 아버지 집으로 향하게 됐다. 여동생네 계실 땐 식사며 약이며 걱정이 안 됐지만 당신 집에 혼자 계시니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약은 계속 깜빡 잊으시고, 왜 안 드셨냐고 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거 안 먹을 거다”라고 못을 박으신다. 구순 노인의 생각을 바꿀 수도, 24시간 아버지를 지킬 수도 없는 현실이 참 암담하다.    

 

압박 골절로 요양원에 계실 무렵 아버지의 분노는 면회 간 아들에게로 향했다. 통증이 좀 가신 아버지는 아들이 당신을 모셔가려는 걸로 알았다가 그 아들이 허리 다 나을 때까지 요양원에 계셔야 한다고 하자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을 고려장 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신 거였다. 그 후로 2주간 남동생은 아버지 앞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여동생 네로 퇴원해 지내시다 2주쯤 지나 여동생이 슬쩍 “오빠(남동생)가 온다네요” 하니 “그래?”하며 그전 일을 잊은 아버지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남동생을 반기셨다고 한다. 그러다 이번엔 막내딸에게 화가 나 당신 집에 돌아와 혼자 계신다. 아버지 화가 누그러지는 기간 2주쯤 지나 전복죽을 끓여 친정으로 간 여동생의 톡이 왔다. “아버지가 ‘장군’이는 왜 안 데려왔냐고 하시네.^^” 그새 막내딸 괘씸 기한이 지났으니 참 다행이다. 아니, 다음은 내 차례니 다행이 아닐 수도….

작가의 이전글 49. 한번 꽂히면 끝까지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