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 끝나면서 사람 만나는 게 수월해졌다. 온라인 수업이나 만남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 터라 긴 마스크 생활이 더 힘들었다.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만 시원한 게 아니라 그 안에 갇혀 있던 마음까지 자유를 얻은 것만 같았다.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요가 수업에서도 1년 반 만인 6월 처음 마스크를 벗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이 사람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또는 ‘내가 상상했던 얼굴과 다르네’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2년 반 만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계속 봐온 타인의 민낯을 처음 마주하는 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마스크 쓴 타인의 얼굴을 보면서 가려진 부분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막상 마스크 벗은 타인의 얼굴이 자신이 상상해 온 모습에 훨씬 못 미쳐 당황스러워한다고.
나도 처음엔 요가강사와 회원들의 얼굴이 어색했다. 뒤이어 그들도 내 얼굴이 자신들의 상상과 달라 당황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단지 마스크를 벗었을 뿐인데 마치 옷을 벗은 듯 허전한 마음에 난 지금도 마스크를 목에 걸고 다니다 조금만 어색한 상황이 되면 마스크를 쓴다. 이 무더위에 마스크 안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라니. 물론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얼굴은 그리 편치 않지만 말이다.
그러다 얼마 전 남편에게 들은 미용실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부터 가게 된 미용실엔 원장과 부원장 등 2명의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남편은 부원장의 단골이었다. 커트를 예약한 날, 남편이 미용실에 들어섰을 때 낯선 디자이너가 앞서 온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고 한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데다 디자이너가 제대로 인사를 안 해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예약 상황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날이 원장의 휴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낯선 디자이너는 남편이 예약한 부원장이어야 할 텐데 아무리 봐도 마스크 썼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스크를 썼을 땐 청바지 차림의 발랄한 대학생 모습이었는데 눈앞의 디자이너는 아무리 봐도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보였다.
소심한 남편은 일단 대기석에 앉아 앞사람 관리가 끝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중년 여성이 미용실로 들어서며 디자이너에게 원장, 부원장 다 어디 갔냐고 물었는데 디자이너가 자신이 부원장이라고 했단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디자이너가 바뀐 줄 알았다, 마스크 벗으니 얼굴이 생각보다 길어서 못 알아보겠다는 등 지나치게 솔직한(?) 멘트를 했다고 한다.
예약도 없이 찾아와 부원장에게 팩트 폭행을 한 중년 여성을 보며 남편은 아무 말 않고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 한편으로 커트하는 내내 부원장 심기를 살펴야 했다. 정작 중년 여성은 오래 기다릴 수 없다며 나가버리고 다음 예약자가 오기까지 부원장과 남편만 남은 미용실 안은 가위질 소리만 가득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마스크 쓴 얼굴로 처음 만난 관계라면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서로 낯설게 뻔하다. 이제 민낯으로 소통할 시간이다. 함께 웃고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다 보면 때론 침이 튀기도 하겠지만 그조차도 서로 면역력을 키워가는 과정일 수 있다. 다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감정과 마음까지 가리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