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물 위의 기억
―낯설지만 강렬한, 그래서 매혹적인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일을 앞두면 나이와 상관없이 가슴 설레는 아이가 된다. 초등 시절 첫 소풍의 기억만 해도 그렇다. 겨우 하루 나들이인 소풍을 앞두고 몇 날 며칠을 엄마표 김밥의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따라다니곤 했다. 하물며 첫 해외여행은 어땠을까.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순식간에 30년 전 일본 후쿠오카의 봄날로 돌아간다. 지금도 그곳에서의 한순간이 머릿속에 박제된 듯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초반 함께 일어를 배우던 학원 수강생들과 함께 일어 선생님을 가이드 삼아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앞둔 때였다. 여동생도 같은 선생님에게 일어를 배웠기에 우리 자매는 함께 여행 준비를 하면서 첫 소풍을 앞둔 초등 1학년처럼 설레고 신이 났다. 그때만 해도 수강생 대부분은 후쿠오카 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우리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깔끔하게 정비된 일본의 재래시장, 길을 물었을 때 일본 사람이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우리 자매를 목적지에 데려다줘서 감동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경험은 후쿠오카의 거대한 목욕탕에서 일어났다. 너무 넓어서 여동생과 둘이 마치 공원을 유람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대욕장의 유리문 밖 풍경에 이끌려 문을 열고 나왔더니 노천탕이었다. 마침 아무도 없었다. 꼭대기에 눈을 얹은 산이 저 멀리 보이고 4월 후쿠오카의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대낮에 발가벗고 노천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긴 처음이었다. 아~ 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머리를 뒤로 젖히고 구름이 하늘에 그리는 그림을 구경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살랑이는 봄바람에 살짝 한기가 들어 얼른 탕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노천탕이 대욕장 주변을 빙 둘러 여러 군데 있는 듯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데 조금 익숙해지자 나도 모르게 몸의 긴장이 풀렸던 걸까. 어느새 난 물 위에 누워 있었다. 물 위에 떠서 정면으로 마주한 하늘은 지금껏 본 하늘과는 달랐다. 하늘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의 어떤 스위치가 켜지면서 ‘나’라는 존재는 그전과 다른 존재가 됐다. 그곳에서 나는 어느 집 큰딸도, 어느 회사 소속 아무개도 아닌 온전히 ‘나’로 존재했다. 노천탕엔 여동생과 둘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내 기억 속 그날의 노천탕엔 여동생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한 사람, 나만 물 위에 떠 있다.
그때 그 노천탕에서의 경험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책임과 의무에 얽매여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했다. 내가 속한 가정, 회사로부터 1년에 며칠쯤은 완전히 벗어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그전보다 자유로워졌고, 그만큼 행복해졌다. 그때부터 1, 2년에 한 번씩 ‘나’를 위한 여행을 했다. 그 계획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다. 부모님 건강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란 걸. 그래서 시가 필요하다는 것도.
물 위의 기억
Jasmine
말도, 물도 선 세상에
처음 스며들었던
오래전 그날
이 세상 오던 그때처럼
벌거벗은 채로
물 위에 누워
마주 본 하늘
태초의 울음 대신
미소가 번지던
봄날의 노천탕
굳은 등을
따뜻이 품어주던 물
코끝을 간질이며
발끝을 스치던 바람
눈 쌓인 먼 산과 어우러져
그대로 풍경이 됐던
물 위의 기억
<지난봄 시 수업을 듣던 중 후쿠오카 노천탕에서의 기억이 불쑥 튀어 올라 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