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세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늦은 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나민애 교수가 시에 대해 특강을 하면서 이상국 시인의 글을 읽어주는 걸 들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지하철 역 출구, 누구나 한번 쯤 부모라면 다 성장한 아이 집에 들러 자고 헤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참 담담하게 잘 그려냈다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내가, 평범하게 초중고 대학교를 거쳐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글 쓰는 일은 어찌보며 사치 또는 너무 호화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불현듯 이 시를 듣는 순간, 다시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세상에 이민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민와서 고생안하는 사람이 어딨어?
언어의 장벽이나 향수병, 그 고민들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찌보면 평범할 수 있는 이 모든 순간들이 돌아보면 다 평범하지 않았고,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더 늦기 전에 한 글자라도 더 꾸역 꾸역 남겨보고자 마음 먹었다.
한번도 만나 뵙진 않았지만 이상국 시인님께, 그리고 그것을 소개해준 나민애 교수님께,
멀리 멀리 호주까지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