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종교도 반반씩 믿을 수 있는가

by Haylee 지혜

40살이 되고 나서 삶이 다시 리셋 된 느낌이다.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를 모두 지우고, 재부팅한 느낌이랄까?

사춘기라기엔 너무 늦고, 갱년기라기엔 아직 이른 나이, 40.


40살이 되기 전 난 불자였다. 그냥 불자 아니고 아주 성실히 마음 수행을 해오던 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에 갔던 엄마를 보며 자랐고, 염주, 불경과 같은 불교 용품이 항상 집안 곳곳에 있었다. 특히, 거실엔 늘 불경과 염주가 놓여있었고, 지금 호주 우리 집에도 108배 방석과 염주가 각 방마다, 그리고 차에 놓여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건 '참선, 명상'의 시간이었다. 마음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 기울이다가, 다시 잡생각으로 가득찼다가, 다시 고요해졌다가 그렇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대학생 때 엄마를 따라, 부산의 작은 조계종 사찰인 '영주암' 토요 참선방에서 꽤 오랫동안 수행을 했었다.


호주에는 한국식 사찰이 없어서 내가 사는 선샤인 코스트에 있는 Chenrezig라는 티벳 절에 열심히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법륜 스님이 운영하는 행복학교나 마음 공부하는 강의를 온라인으로 열심히 들으며, 108배도 하고, 수행도 열심히 했었다.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아직 '하나님'보다 '부처님' '관세음보살'이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을 읽으며 책 곳곳에 기독교에 관련된 설명이 있었고, 또 어제 넷플릭스에서 잠시 봤던 영화 기차의 꿈(Train dreams)에서도 성경책 구절 얘기가 틈틈이 소개되었다. 순간 기독교에 대해서 아예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내 마음을 닫았구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고, 언급하는 그 기독교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하는 의문증이 생겼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번 주말부터 교회에 한번 가볼까?" 제안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함께 가보자고 했다. 처음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듣고 따라 부르고 집에 오는 길에 "우리 다음 주에도 또 와볼까?"하며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찌찌뽕!" 뭔가 통했다.

처음 교회에 가 쭈뼜쭈뼛 서 있는 우리 가족에게 교회에 있는 분들이 손을 향하며 "축복송"을 불러주었다.


"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에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지? 남편이나 딸 아이, 그리고 부모님께 갑자기 불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까? 뭔가 모를 불안과 나쁜 걱정들로 가득하던 머릿 속이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자신감과 기대감으로 채워졌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안에 사로 잡히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야 겠단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걸로 충분했다. 삶에 대한 감사함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내 눈 앞에 있는 일들이 쳐내기 바빴는데, 교회에 있는 그 시간 동안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충만해졌다.


종교도 반반씩 믿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대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좀 더 명확한 답을 얻을 때까지 열심히 성경책도 읽어보고, 또 불교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알려주는지도 공부해 가며 룰루랄라 이 여정을 즐겨보려고 한다.


챗지피티에게 "나는 불교과 기독교의 이론 모두가 마음에 들어. 이런 경우도 있어?"하고 물어봤더니

"괜찮아.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아."하고 대답한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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