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들과 함께한 선상 여행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배에 오른 시각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백두산 관광을 계획할 당시, 홍도나 제주도를 오가는 쾌속선 ‘카페리호’쯤으로 생각하고, 인천에서 영구항까지 넉넉잡아 4~5시간이면 닿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배에 오른 후부터 서서히 빗나가기 시작했다.
중국 여행만 마흔 번 했다는 청주 출신의 일행에게서, 인천에서 영구항까지 무려 24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혹감이 밀려왔다. 처음엔 비행기를 고집하다가 ‘한 번쯤은 배로 가보자’는 마음으로 바꾼 여정이었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니 마음이 심란했다.
그럼에도 이 항로를 선택한 데에는 의미가 있었다. 평소 배를 타는 경험이 거의 없었고, 새롭게 열린 인천-영구 간 항로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내 오랜 관광 목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413호 4인실 침대칸에 짐을 풀었지만, 좀처럼 출항 방송은 들려오지 않았다. 배에 오르자마자 까만 넥타이를 맨 중국인 승무원들이 줄지어 인사하던 모습에 ‘호화여객선이구나’ 하며 기대감에 부풀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함과 불안이 밀려왔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질서가 철저하고 모든 것이 획일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 모습은 달랐다. 느린 행동, 무시되는 신호 체계는 장가계 여행 때도 경험한 바 있다. 비포장 일 차선 도로에 화물차를 세워두고 발을 운전대에 올린 채 잠든 운전기사도 본 적이 있다. 국내선 비행기나 기차가 2~3시간 지연되는 건 일상이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처럼 다혈질 기질이 강한 민족에게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두고, 고추나 마늘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 배는 ‘자정향호’라는 이름의 호화 여객선으로,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었으며 약 300명이 탑승 가능하다. 4인실에는 이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어 불편함이 없다. 특히 선상 공간이 넓고 시원해 쾌적한 항해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침 6시 5분, 금호고속 우등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향할 때만 해도 소나기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궂은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배에 승선한 후에는 열일곱 시간이 넘도록 출항하지 못했다. 안개가 짙어 출항이 지연된 탓이었다. 출국신고를 마친 이상, 상대국 법 적용을 받게 되므로 배에서 임의로 하선할 수도 없었다.
드디어 출항 소식이 전해지자 가슴이 다시 설렜다. 파란 하늘 아래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고, 배는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갈매기들이 손에 닿을 듯 뒤따라오고, 일행 중 누군가가 양파링을 던지자 갈매기들이 날렵하게 낚아챘다.
과자를 받아먹는 갈매기들의 모습은 마치 배구 경기에서 전위 센터가 공을 띄우자 여러 스파이커가 달려드는 장면 같다. 한 마리가 놓치면 다른 마리가 재빨리 낚아챈다. 이 작은 자연의 경연은 선상 위에서 즐기는 소박한 오락이다.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선상에 앉아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최고의 피서가 아닐까. 한여름, 중복 무렵의 더위 속에서도 선상의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싸늘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냉기와 바람이 뺨을 간질인다. 요동반도 끝의 대련항과 함께, 영구항은 새롭게 부상하는 항만이다. 요령성의 수도인 심양과 가까워 주요 무역항으로 성장 중이며, 연간 약 10만 개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부산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의 위안화 가치는 대략 127원 정도이며, 캔맥주 한 병이 4위안(약 500원)에 살 수 있다. 평균 월급은 약 25만~30만 원 수준이고, 총리의 급여도 250만 원 정도라 하니 우리나라와는 경제 구조가 사뭇 다르다.
인천항을 떠나 43시간 만인 8월 1일 오전 11시 30분, 드디어 영구항에 도착했다. 오랜 항해였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느꼈던 여유와 자유로움 덕분이다. 비행기나 고속 쾌속선보다 느리지만, 지평선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는 바다 여행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었다. 통통하게 살찐 갈매기들과 함께한 선상에서의 여정은 마치 '타이타닉호'처럼 호화롭진 않지만, 그보다 더 인간적이고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2006.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