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서

눈물젖은 두만강을 큰소리로 합창했다

by 문운주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해 나진을 거쳐 동해로 흐르는 강이다. 유역의 94%가 임야지로 이루어져 있어, 중류 지역인 나진 우산에서 회령 사이 구간은 뗏목 수송로로 활용되기도 한다.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두만강이고,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압록강이다. 두만강은 풍부한 삼림 자원을 배경으로 뗏목 수송이 활발했으며, 압록강은 우리나라 최대 수력발전소인 수풍발전소가 위치한 곳이다. 발전 용량은 70만㎾에 달해, 과거에는 남한에까지 전기를 공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을 볼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동에서 압록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용정에서 도문시까지 두만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는 두만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용정시에서 약 30분간 농촌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중국이라는 느낌보다는 익숙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옥수수와 콩이 자라고 있고, 산기슭에는 묘지도 몇 기 보인다. 중국은 토장(매장)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지도자 등소평의 개방 정책이 오늘의 중국을 이끌었다고 중국인들은 입을 모은다. 김정일조차 ‘천지개벽’이라며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용정을 지나 도문시로 향하는 길에서 현지 가이드는 설명을 이어간다. 용정의 제지공장과 문산 지역 철광 폐기물 때문에 두만강이 오염되어 악취와 흙탕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과 북한 양측 모두 대책을 마련 중이라 한다. 몇 해 전, 만리장성을 통째로 살 수 있다고 떠들던 졸부들의 뉴스가 떠오른다. 거지 같던 중국인을 보며 기세등등하던 이들이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등소평은 참으로 대단한 지도자였다. 경제 개방뿐 아니라, 묘지 문화까지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우리처럼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국립묘지와 왕릉, 정치인의 조상 묘는 그대로 두는 나라와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 화장을 해 바다에 뿌리라고 유언했다. 과연 진정한 실천의 리더가 아니었을까.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철조망이나 장벽이 아닌,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자연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이동하고 있는 두만강 중류는, 강 남쪽이 곧 북한의 함경북도 땅이다. 이곳 사람들에 따르면,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은 낮에는 남한 쪽에서 농사를 짓고, 밤에는 강을 건너 북한으로 돌아가는 ‘낮농사’를 짓기도 한다고 한다. 산악지대인 함경북도는 가파른 산등성까지 밭을 일궈야 할 정도지만, 자갈이 많고 비료가 부족해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남한에서 보낸 비료가 이곳까지는 도달하지 않는다는 현실도 안타깝다.


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산 중턱 바위에 큼직한 글씨가 보인다.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심지어 중국인들조차 손가락질하며 웃는다고 하니 북한 체제의 폐쇄성과 형식주의를 짐작할 수 있다.


도문시는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조선족이 두 번째로 많이 사는 도시다. 김정일은 비행기를 꺼려 기차를 타고 중국을 방문할 때는 이곳을 통과한다고 하지만, 평소에는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설령 미국이 북한을 공습해도, 김정일은 이 길로 도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녹슨 철교에는 중국 쪽 군인 한 명만 보초를 서고 있고, 북한 쪽은 초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위장 보초를 세운 것인지, 그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도문시보다 북한 쪽이 더 잘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3층 건물이 들어서고, 어린이 놀이시설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허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도문시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조선족 상인들이 복숭아나 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팔고 있다. 우리는 북한산 모시 이불 몇 개를 사주었다. 강 중류의 도문강공원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북한 쪽을 바라보며 뗏목을 타기로 했다. 대나무로 만든 뗏목에 여섯 명이 탈 수 있는데, 오십대 중반의 조선족 남성이 노를 저었다. 그는 형제 둘을 북한에 두고 있다고 했다. 10분 탑승에 6,000원을 받는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끊임없이 말을 건다. 마음이 안쓰러운 모양이다. “북한은 왜 미사일을 쏘아 남한의 온건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걸까. 백두산을 북한 쪽에서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두만강을 이렇게 방치하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두만강은 이름만 그럴 듯한 강이었다. 썩은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고, 깊이도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시커멓게 오염된 강물은 고향의 광주천보다도 훨씬 못했다. 주름이 깊게 패인 조선족 노인에게 수고비를 건네며, 멀리서 작업 중인 북한 군인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우리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큰 소리로 합창했다. 꿈에도 그리던 두만강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내 님, 그것은 잃어버린 조국이었다. 그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우리는 조용히 강을 내려다보았다.




2006.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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